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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포커스] 박병석 국회의장

작성일 : 2021-11-25 18:27 수정일 : 2021-12-16 18:33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세종시 국회 분원 부지를 방문한 박병석 국회의장


박병석은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대선을 앞두고 거세지는 여당과 야당의 충돌을 중재하고 있다. 동시에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 전까지 개헌 논의의 물꼬를 트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또한 박병석은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에 2021년 9월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돼 행정수도 완성에 가속도가 붙었다.

활동
◇ 기자 시절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로서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에서 두루 활약했다. 홍콩 특파원으로 파견된 그는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를 취재했다. 당시 다른 특파원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철수했지만 그는 유일하게 현지에 남아 취재를 계속했으며, 결국 중국 자오쯔양(趙紫陽) 총리 체포 구금 기사를 다뤄 세계적인 특종을 보도했다. 박병석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 정계 데뷔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과 IMF환란 경제청문회 실무팀장, 김대중 총재특보,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역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병석은 1998년 재보궐선거 경기 광명시 을과 1999년 재보궐선거 서울 구로구 을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당내에서 공천받지 못해 출마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연고지인 대전 서구 갑에 출마해 37.50% 득표율로 자유민주연합 이원범 후보를 꺾고 당선돼 첫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대전 서구 갑 지역에서 제21대 국회까지 내리 6선에 당선돼 지역 발전에 힘썼다.

◇ 제16대 대통령 선거 이후
2002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최종 후보로 발탁됐다.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의원들이 이탈하는 등 당내 분열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당에 잔류했다. 이후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당 내부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으나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개혁 소장파 세력이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져 나왔다. 박병석도 여기에 합류해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2003년 열린우리당에서 신행정수도건설위원장을 맡아 12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신행정 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공동 발의를 이끌어내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문제를 제기해 헌법재판소에 해당 사안이 넘어갔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있다는 무리한 논리를 끌어들여 신행정 수도 건설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2008년 전후로 광우병 논란이 커지면서 당시 한미 FTA에서 불거진 쇠고기 협상에 대한 여야 협상을 이끌어 국회 정상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같은 해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국제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는 당의 반대에도 협상 대표로서 ‘1,000억 달러 정부 지급 보증 동의안’을 처리해 금융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택시업계의 경영 사정 개선을 위해 지역별 총량제와 감차에 따른 정부 보조 및 융자지원을 골자로 한 택시운송산업진흥법 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도록 했다.


2008년부터 국정감사 등에서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그는 2011년 여신전문금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데 앞장섰다. 2015년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신용카드 수수료율 대폭 인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 당선된 그는 공약 1호로 ‘신용카드 공제 혜택 기간 연장’을 주장하며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3차례 성공했다.

◇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
박병석은 2020년 6월 제21대 국회의 첫 본회의에서 193표 가운데 191표로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앞서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경선과 후반기 의장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3번의 도전 끝에 국회의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

국회의장 취임 후 여야 원구성을 두고 다툼이 있었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두고 김태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당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이었다. 박병석은 타협을 위해 우선 상임위 정수 개편 논의를 하자고 했으나 끝내 협상이 불발돼 본회의를 연기했다.

상임위를 두고 여러 차례의 협상이 오갔지만 결국 최종 결렬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부의장 협의가 필요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채웠다.

박병석은 2020년부터 국회의 헌법 개정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개헌 논의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국민통합을 제도적으로 풀어내려면 개헌 논의가 필수라는 주장과 함께 대통령선거 직후 새 정부 출범 후 관련 논의의 장을 열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021년 9월 본회의에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회사무처에 직접 세종의사당 건립 전담팀(TF)을 구성하는 등 계속해서 여야 의원을 설득했다.

평가
21대 국회에서 여야를 통틀어 유일하게 6선에 성공한 최다선 의원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중도·온건적인 성향에 계파색이 옅고 신중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합리적 중도개혁주의자라는 평과 함께 여야를 아울러 큰 갈등이 있는 인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9대 국회에서 기초노령연금법 관련 논란이 일었을 때는 이를 중재해 합의를 이끄는 등 중재 능력 역시 출중하다고 인정받는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홍콩 특파원 시절 중국 천안문 사태를 취재했던 경험과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갖춘 중국통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 한중의회외교포럼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중국 특사로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힘을 보탰다.

대전 서구 갑 지역에서 내리 6선에 성공한 박병석은 명실상부한 충청의 거물로 평가받는다. 행정수도 이전부터 국회 통합디지털센터 건립 확정, 서산 공항과 유성 연결, 현충IC 신설 등 충청 지역 핵심 사업을 끌고 오는 거력을 보였다. 

경력
1975년~1985년 중앙일보 사회부, 경제부 기자
1985년 4월~1990년 1월 중앙일보 홍콩특파원
1990년 1월~1994년 1월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1994년 2월~1995년 2월 미국 워싱턴대학교 UW 초빙연구원
1995년~1997년 중앙일보 경제부, 산업부 부장
1998년 중앙일보 부국장,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1999년 8월~2000년 2월 서울시 정무부시장
2000년 민주당 대전시 선거대책본부장
2000년 5월~2004년 5월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민주당 원내부총무
2003년 1월 민주당 홍보위원장,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총재 특별보좌관
2003년 10월 한밭대학교 중국어과 겸임교수
2004년 3월 배재대학교 정치외교학 객원교수
2004년 5월~2005년 5월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 특임교수
2004년 5월~2007년 7월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005년 3월 한남대학교 객원교수, 대전대학교 객원교수, 열린우리당 행복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위원장, 제17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2007년 8월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2007년 11월 성균관대학교 법학대학 초빙교수,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2008년~2008년 5월 제17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2008년~2010년 2월 목원대학교 언론광고홍보대학원 특임교수
2008년 5월~2011년 12월 제18대 국회의원
2008~2009년 8월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2010년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2011년 5월~2012년 2월 목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특임교수
2011년 12월~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민주통합당)
2012년 5월~2013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민주통합당)
2012년 7월~2014년 5월 제19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
2013년 4월~2014년 5월 제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13년 5월~2014년 3월 제19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민주당)
2014년 3월~2015년 12월 제19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새정치민주연합)
2014년 6월~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2015년 12월~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더불어민주당)
2016년 5월~2020년 5월 제20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더불어민주당)
2016년 6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16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재외동포위원장
2018년 7월 제20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20년 5월~ 제21대 국회의원 (대전 서구갑/더불어민주당)
2020년 6월~ 제21대 국회 전반기 의장


가족관계
아내
슬하 2남


학력
대전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학사)
성균관대학교 대학 (중어중문과/수료)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방송학/석사)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방송학/박사)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명예박사)


수상내역
1986년 한국기자상
1996년 한국기자상
2003년 황조근정훈장
2013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15년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 제5회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상임위 모범상
2016년 유권자시민행동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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