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3-14 15:46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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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DB 및 재판매 금지] |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이다. 러시아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대외 확장, 정권 연장에 대한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활동
◇ 국가보안위원회(KGB) 시절과 정계 입문
선전물을 통해 첩보 활동에 대한 열망을 키우건 그는 1974년 대학 재학 중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수습요원으로 발탁돼 1975년 KGB 레닌그라드 지부의 행정부서와 국내담당부서(제2총국 등)을 시작으로 KGB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후 1985년 KGB 제1총국 소속으로 이동해 정보직 요원으로서 동독 드레스덴 지부로 파견 근무를 했으나 낮은 단계 보안 임무와 연락 업무 등을 맡는 데 그쳤다.
소련이 점차 쇠락해가면서 KGB의 입지 역시 점차 좁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서 위장신분으로 근무하는 도중 자유선거로 선출된 신임 레닌그라드 시위원장(시장) 아나톨리 소브차크를 만나 정보업계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푸틴은 KGB에 소브차크와 일하며 감시하겠다는 제안을 올려 정식 작전 승인을 받는 동시에 소브차크에게는 자신이 KGB 요원임을 밝히며 양다리를 걸친다.
KGB 국장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와 보수파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대한 쿠데타를 벌였을 때 푸틴은 이를 지지했으나 곧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상황을 관조했다. 소련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저항 시위가 일고 쿠데타 반대파가 결집하는 과정에서 대세를 읽은 푸틴은 소브차크 편에 완전히 가담한다. 쿠데타는 제압됐으며 보리스 옐친은 소련을 해체했다.
푸틴은 러시아 연방에서 소브차크를 보좌하며 각종 시정 업무에 집중했다. 부시장으로 승진한 그는 소브차크가 95년 선거에서 패하며 직무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이후 그는 옐친 선거캠프에서 직함을 얻는 데 성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옐친과 신흥 재벌 세력인 올리가르히의 신임을 산 그는 친옐친 인사로서 러시아 연방보안국 장관, 대통령 행정실 총무실장, 내부담당 수석보좌관 등 요직을 재직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옐친은 푸틴을 정치적 후계자로 지목하고 1999년 총리로 발탁했다. 취임 당시 인지도가 떨어졌으나 재2차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기를 잡자 이 상황을 이용해 친옐친 정당이 정권을 잡는 데 일조했다.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권 주자 자리를 확보한 그는 옐친이 건강 문제로 사퇴하자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활동했다.
◇ 대통령 취임과 독재
옐친의 후계자로서 2000년 3월 대선에서 높은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 그는 서방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반푸틴 성향의 올리가르히를 척결했다. 이후 기업 국유화 등을 통해 초기 자본 구조를 재배분하는 데 성공한 그는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의 상승을 기회 삼아 러시아의 인프라와 경제를 재건할 수 있었다. 첫 임기 동안 러시아의 경제는 8년 연속 성장했고, 실업과 빈곤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첫 임기 도중 벌어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에서 특수 부대의 포위 공격으로 인질 130명이 사망하자 푸틴의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의 대다수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완강한 대처를 지지했고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정치 스캔들과 인권 탄압, 언론 통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임에 성공한다. 재임에 성공한 푸틴은 초기 외교와는 달리 독자주의 외교 노선으로 선회해 반미 성향의 국가와 손을 잡는 등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헌법상 3번째 연임이 불가능한 그는 대통령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내세우고 총리직을 수행했다. 다만 푸틴은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어 메드베데프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후 푸틴은 2012년 러시아 대선에 나가 60% 이상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같은 사람이 여러 투표소에서 표를 넣는 등 부정선거를 벌여 체첸에서 푸틴의 득표율이 107%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8년 러시아 대선에서 76.66% 득표율로 연임에 또다시 성공한 푸틴은 연금 수급 연령을 개정해 지지율이 10% 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연금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반발을 샀으나 그는 시민 운동가와 기자를 공격하는 등 언론 탄압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법을 하원에서 통과시켜 대규모 시위가 일었다. 그러나 그는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러시아 대통령과 정부를 모독하는 가짜뉴스나 자료를 유포하는 온라인 미디어와 개인을 처벌하는 법안에 서명해 독재를 계속해서 강화했다. 2021년에 들어서는 끝내 대통령직을 중임할 수 있는 헌법 개정에 성공했다.
이러한 행보로 국민의 반발을 사던 그는 코로나19와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지지율이 더욱 하락했다. 여기에 2022년 무리하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정치적·경제적으로 러시아를 파괴에 가까운 상황으로 몰았다.
평가
권위주의적인 독재자로 불리며,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나 장기 집권과 언론 탄압, 선거제도 개편 등 자신의 구미에 맞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 해체 후 계속된 러시아의 경제 하락세를 멈추고 러시아 신흥 재벌 세력인 올리가르히가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끔 견제하는 등 경제적·경제적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그의 치하의 러시아 경제는 경공업과 중공업의 발전이 더딘 반면 석유와 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지적을 받는다.
강경한 외교 정책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단호한 면모를 대중에 자주 보여줘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을 선호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독선적인 행보와 부패, 독재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푸틴의 집권 기간 동안 고유가 시대에 맞물려 러시아는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생활 수준을 개선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러시아인의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러시아의 경제 역시 타격을 입은 가운데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해 국내외의 원성을 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도 등 호신술 등을 연마해 대학 시절 유도 사범 자격을 취득하고 지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등 수준급의 무술 실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딸 외에는 푸틴의 가족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으나 내연녀나 혼외자에 대한 의혹이 있다. 그의 사생활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으며 두 딸 역시 가명으로 대학에서 수학하는 등 신원 역시 불분명하고 단편적인 정보만 알려져 있다.
경력
1975년~1990년 국가보안위원회(KGB)
1990년~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표자회의 의장 보좌관
1990년~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해외위원회 위원장
1996년~1997년 러시아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
1997년~1998년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 실장
1998년 7월~1999년 8월 러시아 연방보안국 국장
1999년 3월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 서기
1999년 8월~2000년 5월 제6대 러시아 총리
1999년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
2000년 5월~2004년 5월 제3대 러시아 대통령
2004년 5월~2008년 5월 제4대 러시아 대통령
2008년 5월~2012년 5월 제10대 러시아 총리
2012년 5월~2018년 5월 제6대 러시아 대통령
2018년 5월~ 제7대 러시아 대통령
가족관계
아내
2녀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국제법/학사)
상트페테르부르크광산대학교 (대학원/경제학 박사)
용인대학교 대학원 (명예박사)
수상내역
2008년 루드비히 노벨상
2008년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지도자 및 혁명가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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