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Home > 기업인

[퍼스널 포커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

작성일 : 2022-05-19 17:36 수정일 : 2022-05-19 17:38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워런 버핏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최대주주이자 CEO다.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뛰어난 투자 실력을 발휘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으며, 왕성한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동
◇ 유년 시절과 배움
워런 버핏은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하마에서 사업가이자 공화당 하원 의원인 하워드 버핏과 라일라 버핏 사이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껌과 콜라병, 주간 잡지 등을 팔거나 식당에서 일을 하는 등 돈을 버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그가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11세 때  일로, Cities Service 우선주를 38달러에 3주를 사서 약 40달러에 매도했다. 그러나 이내 이 주식은 200달러를 넘어섰으며, 버핏은 이 일을 계기로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15세 때 오마하 북부에 위치한 400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구매하기도 했으며 17세 때는 핀볼 머신 대여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버핏은 초등학교를 월반해 일찍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으나 이미 투자와 사업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뤄 대학교 진학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 입학해 경제학부에서 2년간 수학한다. 이내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캠퍼스로 대학을 옮겨 조기 졸업해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대학 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한동안 낙심하던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소개 책자를 보고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과 데이비드 도드(David Dodd)라는 이름을 봤다. 그는 어릴 적 그레이엄의 저서인 '현명한 투자자'를 감명 깊게 읽은 경험을 떠올리고 컬럼비아대학교에 문을 두드린다.

버핏은 평소 숭상해 오던 가치투자(Value Investing)의 대가에게서 배우고 싶어하던 열망을 담아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도드와 그레이엄은 마감시한을 넘기고 면접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합격시켰다. 당시 벤저민 그레이엄은 학점을 낮게 주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버핏은 그가 가르치던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을 정도로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몰두했다.

이후 그레이엄이 회장으로 있는 보험회사 가이코(GEICO)에서 일하고자 1951년 초 가이코 본사를 찾아가 무보수로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인종차별로 인해 금융권 취업이 어려운 유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유대인만을 채용한다는 원칙을 들며 버핏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1951년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마하로 돌아온 버핏은 아버지의 주식 중개 회사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주식 중개와 투자 강의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54년 스승 그레이엄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 전문 투자자가 된다. 당시 버핏은 연봉이나 근무 조건을 듣지도 않고 바로 스승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정식 출근일보다 한 달 먼저 출근해 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버크셔 해서웨이 인수와 도전
35세 나이에 이미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버핏은 1962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버크셔 해서웨이는 섬유산업은 침체기에 빠져 자사가 보유한 공장을 팔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그는 이를 보고 추후 버크셔 해서웨이가 자사주 매입을 시도할 때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팔려고 했다.


그의 예상대로 버크셔 해서웨이 임원은 자사주를 매입하고자 버핏을 찾았고, 당시 버핏은 11.5달러에 주식을 팔겠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그가 메일을 통해 받은 공식제의에는 합의된 가격보다 12.5센트 낮은 가격에 매입하겠다고 제의했다. 이 제의에 버핏은 분노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고 해당 임원을 해고했다.​

버핏은 2000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노숙자 지원단체인 글라이드 재단을 돕기 위해 자신과의 점심식사를 경매에 올렸다. 그는 매년 이 행사 낙찰액을 글라이드 재단에 기부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가 흔들렸을 때에도 버핏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골드만삭스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대주주가 되기까지 했다. 한편 골드만삭스는 미 금융당국이 자기자본 거래 금지 등 규제 수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신문 발행업체 'LEE엔터프라이즈' 관련 8500만 달러 규모의 부실 대출 채권을 1 달러당 65센트에 처분했다. 이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계열사가 이 채권을 매입했으며, LEE엔터프라이즈 채권 가치는 1달러당 82센트까지 올라 버핏은 큰 이익을 거두었다.

2013년에는 브라질 사모펀드인 3G Capital과 함께 식품기업 하인즈를 공동인수하고 2년 뒤 크래프트와 합병해 크래프트 하인즈를 만드는 데 대규모 투자를 했으나 실패해 손실을 크게 입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크래프트 하인즈의 지분을 26.7% 보유했는데, 2019년 140억 달러를 넘겼던 크래프트 하인즈 주가는 실적이 악화와 감가상각으로 87억 달러로 추락했다. 이에 버핏은 관련해서 50억 달러(약 6조 원) 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버핏은 뉴스 시장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돼 종이 신문 광고 매출이 급락하며 신문사업 미래가 비관적일 것이라고 판단해 2020년 자신이 소유한 31개 신문사를 LEE 엔터프라이즈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LEE 엔터프라이즈에 연 9% 이자로 5억 7,600만 달러(약 6,800억 원)를 빌려줘 최대한 이익을 봤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주가가 대폭락하는 상황에서 버핏 역시 피해를 입었다. 다만 그는 미국 시장의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여겨 대부분의 자산을 현금으로 보유해 주가 대폭락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또 그는 투자 손실을 입은 2020년에도 29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주식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하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2022년 1분기 실적은 지난해 1분기 순이익 117억 달러) 약 14조 8,000억 원)에 비해 53% 급감해 54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한편 2000년부터 진행한 '버핏과의 점심' 경매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이내 2022년 6월 경매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낙찰액을 기부하는 이 행사의 낙찰가는 2001년까지만 해도 약 2만 달러(2,497만 원) 선이었으나 싱가포르와 중국 부호가 입찰 경쟁에 뛰어들면서 수백만 달러 선으로 뛰어올랐다. '버핏과의 점심' 경매의 역대 최고 낙찰가는 2019년 중국 가상화폐 트론(TRON) 창업자인 쑨위천의 456만 7,888달러(약 57억 1,000만 원)다.

평가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투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가로 평가받는다. 


막대한 부를 쌓는 과정에서 큰 일탈이나 구설수가 없어 인성과 품격이 남다르다는 평이다.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투자 손실을 입은 해에도 기부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버핏의 기부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부를 통해 자녀가 내야 하는 상속세를 탈루한다는 것이다. 자선재단의 연간 운영비 대부분이 관리인의 월급이나 사무실 유지. 관리 비용 등에 사용되는데, 이를 통해 자녀에게 한 번에 모든 재산을 물려줄 수는 없지만 재단에 있는 자손들이 계속해서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인 클레이튼 홈스사가 인종차별과 고리대금업으로 인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클레이튼은 소수 인종에게 더 높은 이자율을 책정하는 등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으나 버핏은 클래이튼의 대출조항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경력
1961년 뎀스터 밀 회장
1974년~1986년 워싱턴 포스트 이사회 이사, 버크셔 해서웨이 CEO
1987년 샐러먼 브라더스 이사회 이사
1989년~2006년 코카콜라 이사회 이사
1996년~2011년 워싱턴 포스트 이사회 이사
2006년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회 이사


가족관계
아내(재혼)

슬하
2남 1녀


학력
우드로윌슨고등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캠퍼스(경영학/학사)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경제학/석사)


수상내역
2010년 미국 대통령 자유 메달
2012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 저작권자 © 퍼스널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업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