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대수로 성공·성수대교 붕괴 등 명암
작성일 : 2023-10-25 17:31 작성자 : 장유리 (jangyuri0310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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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공산학원 제공] |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지병으로 2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0세.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 최은혁(故), 최용혁, 최재혁, 딸 최선희, 최유정이 있다.
동아그룹 최준문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동아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몰락도 함께했다.
최 전 회장은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68년 동아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 등을 거쳐 1978년 동아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최 전 회장은 남다른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1977∼197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콰디마 항만공사, 1979∼1983년 사우디 알주와 산악도로 건설 등을 성공하며 국내 건설사의 중동 진출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1984년 단일 토목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고 1991년 1단계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2단계 공사까지 따내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최 전 회장은 남다른 추진력으로 주력 사업이었던 대한통운을 키우는 동시에 1983년 공영토건과 동해생명을 인수해 동아생명을 출범하며 금융권에도 진출했다. 1992년에는 동아마스터비전을 세워 1995년 동아TV를 개국했다. 이러한 확장 행보 속에 동아그룹을 한때 계열사 22곳을 거느린 재계 10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동아건설이 시공한 성수대교가 1994년 붕괴해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됐다. 뒤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금리 폭등과 미분양 급증이 맞물리며 경영난에 부딪히자 최 전 회장은 1998년 모든 보유 주식에 대한 처분권을 채권은행단에 위임하고 회장직을 내놓았다.
그러나 동아그룹은 결국 그해 국내 기업 최초로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2001년 파산선고를 받으며 공중분해됐다. 이 과정에서 최 전 회장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가 2008년 사면되기도 했다.
고인은 배우 김혜정, 가수 배인순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으며 마지막으로 1999년 27세 연하의 장은영 전 아나운서와 결혼했으나 2010년 헤어지는 등 당대 유명 연예인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개인사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또 고인은 유친의 부지에 따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예술계와 스포츠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 전 회장은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아 각종 예술인 지원사업을 펼쳤으며, 1993년에는 첼로 신동 장하나에게 6억 원 상당의 과다니니 첼로를 구입해 선물하기도 했다.
또 대한체육회 이사 및 대한올림픽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에도 공을 세웠다. 고인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1988)을 비롯해 요르단왕국 독립훈장,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한편 고인은 1985년부터 학교 법인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등이 이 학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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