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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포커스]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

작성일 : 2025-04-21 17:54 수정일 : 2026-03-27 17:07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프란치스코 교황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은 2013년 3월 보수파와 개혁파 추기경들의 지지를 두루 얻어 제266대 로마 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됐다. 미주 지역 출신의 첫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 서기 8세기 이후 1,300년 만에 비유럽 지역에서 배출된 교황이었다. 2025년 4월 21일 바티칸의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직접 사인은 뇌졸중으로 인한 혼수 상태에 이어진 회복 불가능한 심부전이었다.

 

활동

◇ 출생과 사제 서품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 부부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 태어났다. 화공학자와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생이 되었다.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 수련장과 관구장, 산미겔 철학·신학 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 주교·대주교 시절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서품을 받았으며,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 됐다. 그는 250만 명 이상의 교구민이 있는 대교구를 이끌면서 스스로를 '사람들 가까이 있는 목자'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버스로 이동했고 거리낌 없이 빈민가를 방문했으며 소박한 아파트에서 직접 요리를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호르헤 신부'로 불렀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겸손한 성격과 보수적인 교리 해석 그리고 사회 정의에 대한 투신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그의 검소한 생활 방식은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교황 선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가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즉위식에서는 반짝이는 빨간 구두나 금으로 된 십자가 목걸이 등 전임 교황들이 입던 예복을 입지 않고 검은색 구두와 철제 십자가 목걸이, 레이스 장식 없는 수단을 선택했다.

 

◇ 교회 개혁과 사회적 사목

즉위 초기부터 교회 개혁을 강하게 추진했고, 교황청의 구조와 재정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성직자 성추행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등 기존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가톨릭교회의 문화를 쇄신하는 데 앞장섰다. 냉전 시절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로 활용되는 등 '검은돈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쓴 바티칸 은행에 대한 개혁 조치도 단행했다.

 

2016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제정하고 이주민과 난민의 권리 옹호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여성의 교회 내 역할 확대와 존엄성 회복을 강조하며, 처음으로 여성에게 교황청 부서의 고위직을 맡기는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 외교·평화 활동

교황의 노력으로 바티칸이 주선한 협상에서 미국과 쿠바 간 최종 협상안이 타결됐다. 교황은 쿠바 카스트로 의장에게 수감자 석방을 요청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쿠바 정보요원 석방을 설득했다. 가자지구 전쟁 중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을 "잔학행위"라고 비판했으며, 전쟁이 시작된 후 매일 밤 가자지구 내 성가족성당에 전화해 성직자와 피란민들의 안부를 물었다.

 

◇ 한국 방문

2014년 124위 시복식과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은 한국 방문에서 선조들이 직접 하느님 말씀을 만나 뿌리내린 한국 천주교회의 특별한 전통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 선종

2025년 2월 14일 양쪽 폐에 심각한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3월 23일 퇴원했다. 의사가 2달은 쉬라고 권고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퇴원 2주 후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4월 20일 마지막 부활 담화에서 세계의 평화를 재차 강조하며 성 베드로 광장을 돌며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례미사는 4월 26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으며,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됐다.

 

평가

허례허식 없이 검소했고 낮은 곳에서 빈민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아 '청빈한 사제', '행동하는 성직자'로 불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2년간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과 지구촌의 많은 이에게 사랑과 헌신의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줬다.

 

반면 재위 도중 계속 터져 나온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한 각종 성범죄 및 성폭행 사건 은폐에 대해 교황 본인이 이를 알고도 문제를 일으킨 성직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또한 진보적인 언사와 행보로 인해 가톨릭 내 보수파들이 깊은 불만을 드러내는 등 교회 내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경력

1969년 사제 서품 (예수회)

1973년~1979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

1998년~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2001년 추기경 서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5년~2011년 아르헨티나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2013년~2025년 제266대 로마 가톨릭 교황

 

가족관계

부친: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철도노동자)

모친: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

 

학력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화학과 학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소속 원죄 없으신 잉태 신학교 수료

산미겔 철학·신학 대학 철학·신학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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