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6년 투병 끝 중환자실서 별세…복귀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비보
작성일 : 2026-01-05 17:57 수정일 : 2026-03-24 15:39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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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레드카펫 인사를 하는 안성기. [사진=연합뉴스] |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자 '국민 배우'로 불려온 안성기가 1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엿새 만이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이후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2020년 한때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이 확인됐고, 2022년에는 스스로 병마와의 싸움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면서도 회복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고, 2023년 인터뷰에서는 건강이 많이 나아졌다며 새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같은 해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 선배·후배 배우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관객들로부터 따뜻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안성기의 영화 인생은 만 5세이던 1957년 '황혼열차'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의 인연으로 김기영 감독 작품에 아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에 처음 섰고, 1959년작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특별상을 받을 만큼 일찍부터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다. 이후 10년간 70여 편의 작품에 아역으로 출연하다 동성고 진학 후 학업에 전념하며 연기 활동을 잠시 멈췄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전공을 살린 해외 취업을 꿈꿨으나, 베트남전쟁의 여파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좌절이 오히려 그를 다시 영화계로 이끄는 전환점이 됐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1977년 성인 배우로 복귀한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본격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이후 한국 영화의 굵직한 역사와 궤를 함께했다.
1980년대에는 '만다라'(1981),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칠수와 만수'(1988) 등에서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섬세하게 소화하며 연기파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에는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흥행작과 예술영화를 가리지 않고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에도 한국 첫 천만 영화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등으로 건재함을 과시했으며, 2010년대 이후에도 '부러진 화살'(2012)과 '화장'(2015) 같은 작품에서 원숙한 연기를 펼쳐 보였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밟은 작품은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보좌한 장수 어영담 역을 맡았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4개 연대에 걸쳐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한국 영화 역사상 안성기가 유일하다.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쌓아 올린 수상 횟수만 40여 회에 달하며, 2013년 은관문화훈장, 202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출로 예우의 정점을 찍었다.
배우로서의 명성 외에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 힘썼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동서식품 커피 맥심의 모델로 38년간 활동하며 친숙한 얼굴로 대중 곁에 머물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거행되며, 배우 이병헌·이정재·정우성·박철민이 운구를 맡고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조사를 낭독한다. 발인은 1월 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양평 별그리다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두 아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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