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낀 채 남긴 구수증서 유언…"급박한 상황, 다른 방식 불가"
작성일 : 2026-05-04 17:47 작성자 : 오두환 (odh83@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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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 손 [사진=연합뉴스] |
임종을 앞두고 병상에서 남긴 유언의 법적 효력을 둘러싼 소송에서 1·2심 패소를 딛고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 사례가 나왔다. 유언 방식의 적법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극적으로 뒤바뀐 사건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점점 더 빈번해지는 병상 유언의 법적 기준에 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가 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에 환송했다.
A씨의 이부형제 B씨는 2021년 4월 입원 중 "예금채권, 주거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등 재산 전부를 A씨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해 정확함을 확인하는 방식인 '구수증서 유언'이었으며, 현장은 영상으로 녹화됐다. B씨는 유언 3일 후 사망했다.
이후 A씨가 유언장에 기재된 약 9천600만원의 예금채권 지급을 요청했지만 은행이 이를 거부하면서 2022년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의 핵심 쟁점은 유증의 성격 분류였다. 유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포괄적 유증'은 재산이 수증자에게 직접 이전되는 반면, '특정 유증'은 재산이 일단 상속인에게 귀속된 뒤 수증자에게 전달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포괄적 유증으로 인정받으려면 유언에 언급된 재산 외 다른 재산이 없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2심에서는 전혀 다른 쟁점이 부각됐다. 구수증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다른 유언 방식을 택할 수 없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최후 수단이다. 은행 측은 B씨가 당시 녹음이나 공정증서 방식으로 유언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구수증서 유언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수증자를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녹화 영상에서 모든 재산을 A씨에게 증여한다는 발언은 인정했지만, 날짜 언급이나 증인의 구술 확인이 없어 '녹음에 의한 유언'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봐 역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에 결정적 오류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유언 당시 B씨는 호흡곤란으로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상태로, 정상적인 발음이 어렵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도 곤란했다"고 지적했다. "제3자의 도움 없이 자필증서를 작성하거나 육성 녹음을 통해 주도적으로 유언 취지, 성명, 날짜를 구술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유언 3일 만에 사망한 경위를 감안하면, 녹음 외 다른 방식으로 유언이 가능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B씨는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 방식에 의한 유언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구수증서 유언의 적법성을 판단할 때 단순히 발화 능력만이 아니라 당시의 신체적 상태, 의료 기록, 이후 경과 등 구체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령화와 함께 병상 유언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유언 당시의 의료 기록과 신체 상태를 최대한 상세히 남겨두는 것이 이후 분쟁 예방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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