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으로 몰지 말라"·"케이블타이 압수 말라"…보고서까지 재작성 지시
작성일 : 2026-07-15 17:39 작성자 : 오두환 (odh83@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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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라인 선 '여고생 흉기 살인' 장윤기 [사진=연합뉴스] |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에게 단순 살인죄가 적용된 배경에는 담당 수사팀장의 조직적인 '묵살'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증거를 놓친 게 아니라, 강간 목적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정황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뭉갠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장윤기 사건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은 15일 광주경찰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별수사단은 이번 사건을 사건 발생부터 검거·구속·검찰 송치 단계까지 전 과정에 걸쳐 범행 동기를 밝힐 증거와 단서 대부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주요 정황 증거도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의도적인' 부실 수사로 자체 평가했다.
"성적으로 몰지 말라"…거듭된 묵살 지시
특별수사단에 따르면 장윤기 사건을 1차 지휘한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 소속 박모 경감(강력팀장)은 팀원들에게 "성적으로 몰아가지 말라"고 지시해 조사 범위 자체를 제한했다. 강력팀 내부에서 '강간살인죄' 적용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성적인 범행 목적을 검토해야 한다는 과학수사 분야 면담 보고서를 받고도 이를 수사 기록에서 누락시켰다.
장윤기가 피해 여학생을 제압할 당시 차 뒷문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보고서 역시 박 경감의 지시로 '불분명하다'는 내용으로 재작성됐다. 여학생 살해 전 장윤기가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저질렀던 스토킹 범죄를 반영한 수사보고서에서도 특정 내용을 빼도록 했고, 다른 분석 보고서를 첨부할 때도 '성적 목적'은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아버지가 케이블타이와 리얼돌 등 주요 증거를 인멸하게 된 배경에도 박 경감의 지시가 있었다.
사건 당일 차량 감식 현장에서 박 경감은 케이블타이를 직접 만져보고도 팀원들에게 "압수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후로는 관련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 케이블타이 등 실물을 확보하지 않은 채 차량과 자취방을 사건 하루 또는 사흘 만에 가족에게 넘기도록 한 것도 그였다. '봐주기 수사' 의혹 파문이 확산하던 지난 2일에는 누락된 자료를 검찰에 추가로 송치하라는 상부 지시마저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날 케이블타이를 촬영한 현장 감식 영상을 삭제하라는 명령까지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증거 놓친 게 아니라 뭉갰다
특별수사단이 지목한 부실수사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윤기가 범행 전후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는 혈흔 2곳이 발견됐지만, 차량을 압수하지 않고 장윤기 아버지에게 되돌려주면서 성범죄 목적 여부를 밝힐 기회를 놓쳤다. 혈흔이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 뒤쪽 문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납치 목적 여부도 조사했어야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SUV 뒷문이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보고서 역시 팀장 지시로 삭제된 뒤 '불분명하다'는 내용으로 다시 작성돼 검찰에 넘어갔다. 결박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어 강간 목적을 뒷받침할 케이블타이도 사건 이튿날 아버지에게 차량을 인계하면서 확보하지 못했다.
장윤기 자취방 화장실에 있던, 주요 부위가 반복적으로 훼손된 리얼돌 2개도 당시 수사팀이 실물로 확보하지 않았다. 이후 검찰이 성범죄 목적의 근거로 지목했던 이 리얼돌은 결국 사라졌다.
특히 광산서 수사팀은 아버지와 12차례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며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자취방 위치와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줬고, 이 때문에 리얼돌과 장윤기가 학창 시절 쓰던 휴대전화 2대도 불에 타 없어졌다. 리얼돌 DNA 감식 결과서마저 고의로 누락되면서, 묵살 지시와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도 경찰 스스로 놓친 셈이 됐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살인 범행 직전 장윤기가 피해 여고생의 목을 조른 행위 자체를 강간 범행에 착수한 증거로 봐야 한다"며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를 의심할 정황을 발견하면 참고하거나 재조사해야 하지만 팀장의 묵살 지시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 경감 등 검찰 송치…"피해자 사전에 알았다" 정황도 뒤늦게 확인
특별수사단은 장윤기가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되도록 깊이 관여한 박 경감에게 증거인멸,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적용해 이날 검찰에 넘겼다.
박 경감은 "케이블타이, 리얼돌 등 증거가 살인의 주요 증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스토킹과 살인 행위를 연결 짓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수사단은 당시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등 박 경감의 직속상관들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함께 입건했다.
박 경감이 지휘한 강력팀 소속 A 경사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A 경사는 장윤기 아버지에게 압수수색·구속 계획 등 수사 정보를 알려준 혐의를 받는데, 통상 보호자에게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선 수사 기밀을 누설한 정황이 확인됐다. 두 사람은 2024년부터 지난해 사이 약 6개월간 일선 지구대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별수사단은 장윤기 아버지 역시 박 경감 등에게 증거인멸을 교사하거나 청탁한 정황이 드러나면 피의자로 입건할 방침이다.
수사 과정에서는 뜻밖의 사실도 드러났다. 장윤기는 그동안 검경 조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여학생인 줄 몰랐다"며 피해자와 일면식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범행 후 압수된 스마트폰 공기계에서 이를 뒤집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사건 발생 2개월 만에야 장윤기가 범행 전부터 피해 여학생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특별수사단은 광산경찰서 담당팀이 사건 초기 이를 인지하고도 조사하지 않았던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오동욱 특별수사단장(경무관)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할 수사 담당자가 도리어 범행의 증거물을 은닉함으로써 유가족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드렸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편 특별수사단은 부실 수사 과정에서 금전 거래나 상부 지시, 외부 청탁이 있었는지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장윤기에게 일반 살인죄를 적용한 판단이 수사 지휘 라인에서 나왔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경위를 규명하는 한편, 장윤기가 여고생 살해 직전 저지른 여러 성범죄 혐의를 여성청소년과가 살인 행위와 분리해 수사한 경위도 확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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