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Home > 일반인

쿠팡 산재 은폐 정황 확인하고도 불기소…유족 "쿠팡에 면죄부" 반발

노동부, 206건 적발해 61건 사법처리·과태료 19억6천만원…불법파견·블랙리스트는 위법 못 찾아

작성일 : 2026-10-23 16:34 작성자 : 김수희 (battie009@nate.com)

고용노동부의 쿠팡 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였던 고(故) 장덕준씨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을 수사한 고용노동부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부적절한 지시 등 은폐 정황을 확인하고도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유족과 노동단체는 "노동부가 쿠팡에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했다.

 

노동부는 22일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물류센터와 배송캠프 105곳을 기획 감독한 결과를 공개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로기준법 위반 206건을 적발해 61건은 사법처리하고, 145건에는 과태료 19억6천여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다. 그러나 가장 관심을 모은 산재 은폐 의혹은 법적 요건 미비와 공소시효 도과를 이유로 공소청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장씨는 2020년 10월 경북 칠곡군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심야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노동부 수사에서는 김 의장이 쿠팡 관계자에게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쿠팡 관계자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 등 범주로 나눈 뒤 장씨가 쉬는 장면만 담기도록 자료를 정리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런데도 형사책임을 묻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공소시효 5년이 지났다. 산안법상 산재 은폐죄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산재 은폐죄가 성립하려면 산재 발생 사실을 감독 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외부에도 새 나가지 않게 하려는 적극적인 방해 행위가 인정돼야 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보고가 있었고, 근로복지공단 산재 승인 과정에서 직접적인 방해 행위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산안법상 산재 은폐죄로 의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별도 건에서는 수사가 이어진다. 노동부는 쿠팡 측이 유가족에게 합의금을 주고 관리자와 면담하는 방식으로 산재요양 신청을 취하하게 하고 산업재해 조사표를 내지 않은 2건에 대해 범죄 인지 후 수사를 시작했다.

 

적발 내용을 보면, 산재 조사표를 내지 않았거나 늦게 낸 25건에는 1억7천여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예정이다.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질병이 생기면 산재 조사표를 1개월 안에 관할 노동관서에 내야 한다. 이 밖의 산안법 위반 178건 가운데 컨베이어 방호조치와 지게차 접촉 방지 조치를 하지 않은 59건은 범죄 인지 후 수사한다.

 

야간노동자 특수건강진단 미실시와 휴게시설 설치·관리 부실 등 119건에는 약 17억8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계열사별로는 쿠팡 3천여만원, 쿠팡CFS 12억9천여만원, 쿠팡CLS 6억3천여만원이다.

 

불법파견과 블랙리스트 의혹은 위법 사항이 확인되지 않았다. 쿠팡CLS가 쿠팡 소속 배송기사에게 실시간으로 업무를 지시한다는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 노동부는 "쿠팡과 쿠팡CLS는 각자 소속 노동자에게 노선 배정과 업무 배치 등 지휘·명령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사의 배송 상품이 명확히 나뉘어 있어 쿠팡이 쿠팡CLS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노동부는 관리자 교육 등 예방조치를 지도할 방침이다.

 

저성과자 퇴출프로그램(PIP)은 운영 사실이 확인됐지만, 이를 통해 해고한 사례는 잡히지 않아 해고 제한 위반은 성립하지 않았다. 쿠팡은 하위 10% 노동자 등에게 수행이 불가능한 과제를 줘 사실상 퇴출용으로 썼다는 의심을 받았다. 다만 PIP의 주요 내용을 취업규칙에 적지 않은 점에 대해 시정지시와 과태료 70만원이 부과됐다.

 

일부 퇴사자 명단(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을 만들어 자사 재채용 때 참고한 사실도 확인됐으나, 타사 취업을 방해하려 외부에 공유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아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명단을 타사에 취업하는 걸 방해할 목적으로 활용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자사 채용에만 썼을 때는 근로기준법 의율을 못 한다는 다수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쿠팡은 이번 감독을 계기로 다수의 법 위반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존중하는 경영 방침을 확립해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쿠팡 외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다수의 위반이 확인된 만큼 물류센터 전반에 대한 지도·감독을 이어갈 방침이다.

 

쿠팡은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필요한 사안들은 충실히 소명해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김 의장의 부적절한 지시가 확인됐다는 노동부 발표에는 반박했다. 쿠팡은 "해당 지시 내용은 비위행위로 해고되고 소송에서 패소한 전직 임원의 일방적 주장이며, 관련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발표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유족과 노동단체의 반발은 하루 뒤 터져 나왔다. 쿠팡 산재 피해 유가족 모임과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는 2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쿠팡에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먼저 쿠팡이 산재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은폐가 아니라고 본 판단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기업에는 산업재해 발생 원인을 기록·보존하고 보고할 의무가 있는 만큼, 김 의장이 장씨가 열심히 일한 기록이 남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의혹 자체를 산재 은폐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시효가 지나도록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노동부 내부의 문제도 밝혀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유가족은 블랙리스트 판단에도 날을 세웠다. 이들은 노동부가 2021년 내부 취업 방해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행정해석을 내놓은 만큼, 이번에 "회사 내부에서 노동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행위는 위법이 아니다"라고 한 판단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24년 쿠팡CFS가 기피 인물의 취업을 막으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 해당 명단에 기자와 노조 간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의혹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노동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대응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산재 은폐와 관련해 위증한 쿠팡 임원들의 처벌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퍼스널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