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12·12 쿠데타…3金 누르고 당선된 첫 직선제 대통령
작성일 : 2021-10-26 16:33 수정일 : 2021-10-29 10:01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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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이자 직선제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랜 지병으로 병상생활을 지내다 최근 지병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 (현 대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인 아버지 노명수와 어머니 김태향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공산초등학교와 대구공업중학교(대구공고),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육사에서부터 시작한다.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생도 시절 같은 방을 쓰며 돈독한 관계를 쌓았다. 전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 노 전 대통령의 결혼 사회를 봤을 정도다.
1979년 육군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 '하나회'의 핵심으로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지휘하던 9사단의 29연대 30연대를 출동시켜 쿠데타를 지원했다. 전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쿠데타 세력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를 명목으로 체포해 청와대를 포위하고 국방부를 시작으로 차례로 정부를 장악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 해인 1980년 신군부 집권을 규탄하는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해 결국 권력을 완전히 손아귀에 쥐었다. 쿠데타 성공 후 노 전 대통령은 정무장관으로 시작해 초대 체육부장관, 내부무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민정당 대표위원,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며 군인에서 정치인으로서, 전 전 대통령의 이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당시를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 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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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전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 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인 6·29 선언을 제시했고 전 전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이를 계기로 온건 군부 이미지를 구축한 노 전 대통령은 '1노(盧) 3김(金)' 구도의 반사이익으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36%의 득표율로 앞서며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취임 이후 '5공 청산'이 시작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에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게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은신할 것을 권했고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백담사로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국민통합, 북방 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내세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구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 등의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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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2·12 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혐의로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95년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비자금 조성 사건 등으로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됐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두 전 대통령은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지난 2013년 9월에 뒤늦게 모든 금액을 완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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