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납 추징금 956억 원 환수 어려울 듯…미납 지방세 9억 7,000만 원에 달해
작성일 : 2021-11-23 18:15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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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사진=연합뉴스] |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23일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지난 8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 골수증 진단을 받은 전 씨는 자택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져 그대로 명을 달리했다. 이를 발견한 이순자 씨는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했으나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은 전 씨가 5·18과 제5공화국 비리 책임자 처벌자 요구에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서 은거를 시작한 지 꼭 33년이 되는 날이다. 12·12 쿠데타 동지였던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28일 만이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 씨는 1955년 육사를 졸업해 군 내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다 박정희 피살로 제4공화국이 끝난 해인 1979년, 12월 12일에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무단으로 내란 방조죄 혐의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군 지휘체계를 무너트리는 하극상을 벌였다. 군 실권 장악하고 군부를 하나회 중심으로 재편한 그는 1980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서울의 봄'을 짓발았다. 이어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같은 해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했다. 이때 정적인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金)의 발을 묶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에 광주 시민들은 비상계엄령 확대 다음 날인 5월 18일 민주주의 복원을 주장하며 거리에 나왔지만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유혈 진압을 감행해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를 짓밟았다. 이후 6월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 보위비상대책 위원회를 발족하고 국회를 해산시켰다.
같은 해 8월 대장으로 군복을 벗은 그는 1980년 9월 1일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로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올라 독재를 시작했다. 1981년 1월에는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돼 개정한 헌법에 따라 그해 3월 체육관 선거로 다시 제12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전두환 정권은 두발·복장 자율화, '3S 정책'(스크린, 스포츠, 섹스) 등을 시행해 유화책과 우민화 정책을 같이 펼쳤다. 동시에 삼청교육대를 세우고 인권을 유린하는 공포정치를 이어갔다. 권력을 잡은 후에도 '반정부 인사'로 의심되는 사람을 모두 잡아들여 고문을 이어 갔다.
결국 정권 말기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이러한 탄압이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인 박종철 군을 불법 체포하고 고문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은폐 시도를 했다. 5개월이 지난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위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전두환은 전국적인 민주항쟁에 항복했다. 그해 6월 29일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선 후보가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해 전 씨의 독재는 막을 내리게 된다. 퇴임 이후 전 씨는 1996년 내란, 내란목적살인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됐다. 수감 2년 후인 1997년 12월 22일, 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석방됐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족을 통해서라도 5·18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한 것과 대조적으로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사과 한 마디를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떴다. 전 씨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취재진으로부터 전 씨가 사망 전 5·18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남긴 말이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며 "형사소송법에도 죄를 물으려면 시간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물으라고 돼 있는데 그냥 막연하게 사죄하라는 건 옛날 원님이 사람 붙잡아 놓고 '네 죄를 네가 알 터이니 이실직고하라'는 것 아닌가"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육하원칙에 따라 그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서 어떤 부대를 어떻게 지휘했고 누구에게 어떻게 집단 발포 명령을 했는지, 그것을 적시한 다음 사실이냐 아니냐 묻고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고 그래야지 무조건 사죄하라고 그러면 그게 질문이 되느냐"고 말했다.
오히려 "광주 피해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그런(사죄) 말씀은 이미 하신 바 있다"며 "백담사 계실 때도 그렇고 여기 연희동에 돌아오신 뒤로도, 사찰에 가서도 기도와 백일기도하시고 여러 차례 했는데 더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다.
다만 "사죄의 뜻을 밝힌 건 대통령이 된 후 광주 사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충분히 못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서 유감스럽다는 말을 한 것이지 발포 명령했다고 사죄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 씨는 생전 출간한 회고록에 5·18 당시 광주 시민들에 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만쟁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한 항소심이 오는 29일 예정됐지만 이날 사망하면서 유야무야됐다. 결국 전 씨의 5·18에 대한 심판은 역사에 맡겨졌다.
전 씨가 생전 내야 하는 추징금 2,205억 원은 여전히 완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씨에게 확정된 추징금 2,205억 원 가운데 57%인 1,249억 원을 집행했으나 나머지 956억 원은 환수하지 못했다. 전 씨는 추징금에 대해 본인 명의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는 말 등을 남긴 채 추징금 납부를 거부해왔다.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2,6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완납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추징금은 법정 상속분이 아니므로 전 씨가 사망하면서 미납 추징금을 받을 길이 없어졌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은 "당사자 사망이지만 추가 환수 여부 등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미납 추징금 집행 가능성에 대해 관련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 씨가 서울시에 체납한 지방세 9억 8,200만 원에 대해 서울시는 2018년 전 씨에게서 압류한 물품 나머지를 우선 공매 처분할 예정이다. 다만 이 역시 5년 안에 다른 재산을 찾지 못하면 징수권이 소멸되므로 완납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 씨는 2014년 아들 재국 씨와 재만 씨 명의의 부동산이 전 씨의 명의신탁 재산으로 분류돼 공매 처분하면서 발생한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총 4건의 지방세를 내지 않아 8년째 서울시 고액 체납자 명단에 포함됐다.
앞서 2018년 12월 20일 서울시는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전 씨의 자택을 수색해 TV, 냉장고, 병풍 등 가전·가구류와 그림 등 총 9점을 압류했다. 서울시는 이 중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과 '수고천장도' 등 그림 2점을 2019년 7월과 12월에 각각 공매해 총 6,900만 원을 환수했다. 또 서울시는 2017년 8월에는 전 대통령 회고록의 저작권 사용료를 압류한 바 있다.
한편 전 씨는 이미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받았으므로 국립묘지법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같은 이유로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는 국가보훈처의 판단을 받았다.
또한 국가장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 여부는 행안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이 최종결정하는데, 청와대는 이미 전 씨의 국가장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라디오에서 "전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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