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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포커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작성일 : 2022-03-24 18:17 수정일 : 2022-03-25 14:45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화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승연은 한화그룹 회장이다. 방산과 건설, 화학, 태양광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항공우주, 그린 에너지, 디지털 금융 등 미래사업을 한화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활동
◇ 한화 승계와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
김승연은 부친인 김종희가 갑작스럽게 별세해 1981년 29세의 나이로 한화그룹을 물려받았다. 그는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각각 80억 원, 430억 원에 인수해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그는 막대한 인수비용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산업의 장래성을 보고 두 업체의 인수를 결정했다. 그 결과 1980년 7,300억 원 규모였던 한화그룹의 매출은 1984년 2조 1,500억 원으로 급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1983년에는 미국 정유회사인 유니언오일과 1969년 합작형식으로 세운 경인에너지의 지분을 넘겨받아 이름을 한화에너지로 고쳤다. 1985년 정아그룹을 인수한 그는 현재의 한화호텔&리조트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다음 해에는 지금의 한화갤러리아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사들였다.

1986년 빙그레이글스(현 한화이글스)를 창단해 스포츠 사업에도 투자를 이어갔으며 1990년에는 진보 계열 언론사인 경향신문을 인수했다. 1993년 아테네은행 인수,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헝가리 한화은행) 인수 등 해외 진출에도 힘썼다.

◇ IMF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
김승연이 이끄는 한화그룹 역시 IMF 외환위기의 물결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는 37개 계열사를 17개로 대폭 줄이는 등 전 사업 부문에 걸쳐 경쟁력 제고 차원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이 우수한 핵심 계열사와 우량자산을 매각해 1997년 말 1,2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2000년 130%까지 낮추는 데 성공하며 내실을 다졌다.


구조조정 당시 비축한 1조 원의 여유 자금은 2002년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인수에 쓰였다. 그는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던 대항생명보험의 대표를 직접 맡아 경영 정상화까지 무보수로 일하며 6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0년 한화생명은 한국거래소에 상장됐으며, 같은 해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해 금융업 분야의 저변을 넓혔다.

구조조정 이후 그는 홍선기 당시 대전시장의 대덕테크노밸리 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그는 수익성이 크지 않은 사업이라는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 기여를 위해 대덕테크노밸리 사업에 착수했다. 1999년 첫 삽을 뜬 공사는 2009년 11월에 준공됐다.

한편 2007년에는 김승연의 차남 김동원이 클럽에서 종업원 8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김승연은 경호원 17명을 이끌고 쇠 파이프와 전기 충격기 등을 동원해 보복 폭행을 저질렀다. 그는 이러한 사적 제제 과정의 뒤처리를 맡은 조직폭력배 맘보파 두목 오 모 씨에게 1억 1,000만 원을 지급하고 경찰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찰 간부에게 5억 8,000만 원에 달하는 뇌물을 돌리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는 2010년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해 한화솔라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에는 한화솔라에너지를 설립하고 2012년에는 파산했던 독일 큐셀을 인수하는 등 승부수를 띄웠다. 이후 그는 한화솔라원과 큐셀을 합병해 한화 큐셀을 출범했다.

◇ 한화 계열사 대표 사임과 경영복귀
2012년 김승연은 한유통과 웰롭, 부평판지 등 3곳의 부실 차명회사를 불법 지원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로 불구속기소돼 징역 4년에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 집행 4개월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2013년 징역 3년으로 감형됐으며 상고심에서 2심을 파기환송하고 2014년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이 확정됐다. 이 일로 그는 한화 주요 계열사 대표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2014년 형이 확정된 이후 김승연은 막후에서 한화그룹의 경영을 이어왔다. 그는 2015년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등 삼성그룹의 방산 및 석유화학 부문 4개사를 인수했다. 당시 인수합병에 들인 비용은 1조 9,000억 원가량으로, 이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최대 규모다. 이어 그는 2016년 방산기업인 두산DST(현 한화디펜스)까지 인수해 국내 방산업계를 장악했다.

2014년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물밑에서만 경영을 이어오던 그는 2021년 3월 한화,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등 계열사 3곳 미등기임원에 오르며 한화그룹 경영에 공식적으로 복귀했다. 김승연은 경영복귀 이후 항공우주와 그린에너지 등 신사업을 적극 후원해 이를 맡은 장남 김동관의 역할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평가
신용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인물로 승부사 기질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IMF 외환위기 당시 한화에너지를 현대 정유에 매각할 때 100% 고용 승계 원칙을 내세운 일화에서 두드러졌다. 그는 외환위기 여파로 후원에 어려움을 겪은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를 2000년부터 꾸준히 후원하는 등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인수합병에 뛰어난 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많은 인수합병을 별다른 불협화음이 없이 성공한 데는 신용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그의 성격 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81년 부친인 김종인의 사망으로 29세에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한 그는 취임 당시 7,548억 원이었던 그룹 총자산을 217조 원(2020년 기준)으로 무려 288배나 끌어올리는 등 뛰어난 경영 감각과 단호한 결단력을 보였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크다. 특히 복싱과 야구, 사격을 좋아하는데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의 회장사를 맡고 1982년부터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2009년에는 국제 아마추어복싱연맹 산하 국제복싱발전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매년 100억 원대의 적자를 내는 야구단에 끊임없이 투자해온 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야구단 운영에 대한 안목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남을 제외한 자녀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장남 김동관은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책을 한 박스씩 선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동관은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하며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사내이사로 선임돼 경영 승계를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장남 김동관은 오랜 유학 생활과 국제행사 경험으로 세련된 매너와 국제적 감각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또 부친인 김승연 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경영 일선을 떠났을 때 그룹의 주요 현안에 자기 의견을 내면서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김동원의 경우 보복 폭행 사건 외에도 뺑소니, 마약 사건 등에 연루됐다. 2011년 2월 그는 운전 중 반대편 차선에 있는 차량을 충돌 사고를 내고 상대편의 안전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달아났다. 이 사고로 그는 불구속 입건돼 2011년 4월 법원으로부터 벌금 7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또한 그는 2010~2012년 동안 경기도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 소속된 주한미군이 국제 택배로 밀반입한 대마초를 여러 차례 피운 혐의로 2014년 법원에 넘겨졌다. 결국 그는 2014년 2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약물치료 및 강의 수강을 명령받았다.

삼남 김동선은 2010년 서울의 고급 호텔 바에서 만취해 마이크를 던져 유리창을 부수고 이를 말리는 호텔 여종업원을 성추행했으며, 보안직원 2명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재물손괴에 대해서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폭행 혐의와 성추행 혐의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7년 1월에는 서울 청담동 한 술집에서 종업원 2명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그는 같은 해 3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이후 그는 2017년 9월 김앤장 소속 신입 변호사 10여 명과 가진 친목 모임에서 남자 변호사의 빰을 때리고 한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등 폭행과 폭언을 저지르기도 했다.

경력
1981년~ 한화그룹 회장
1981년 8월~ 제2대 북일고등학교 이사장
1982년 세계아마복싱연맹 수석부회장, 아시아지역 회장1983년 한미대양주협력회 이사
1991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1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2년~1998년 경향신문 회장
1993년~1997년 아테네은행 회장
2002년 9월 외교통상부 경제통상대사
2002년 12월~2005년 3월 대한생명보험 대표이사 회장
2004년 10월 유엔평화대학 개발위원회 위원장
2005년 3월~2007년 9월 한화그룹 대표이사 회장
2006년 7월 유엔한국협회 회장
2007년 3월 그리스 명예 총영사
2008년 9월 한화그룹 대표이사 회장 재취임
2009년 3월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
2009년 8월 국제복싱발전재단 이사장, 한화이글스 프로야구단 구단주


가족관계
아내

자녀
3남

학력
멘로대학 (경영학/학사)
드폴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석사)
서강대학교 (경영학/명예박사)

수상내역
1982년 체육훈장 백마장
1984년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체육훈장 청룡장
1996년 그리스 대훈장
2009년 제16회 한국경영사학회 창업대상
2012년 밝은사회클럽 평화봉사대상 평화봉사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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