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가족 모두 임종 지켜”
작성일 : 2022-05-09 17:25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 |
| 9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8일 오후 4시께 81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마지막에 대해 고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제 아내와 장인·장모 등 함께 사는 가족 모두 임종을 지켰다. 일일이 손을 잡아보고 웃음을 보이신 뒤 평온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임종 하루 전인 지난 7일부터는 죽조차 드시지 못했는데, 어제 임종 전 입에 넣어 드린 미음이 마지막 식사셨다”며 “말도, 글도 남기지 못하셨지만,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셨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평소 잘 하지 않으셨던 가족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제 아내와 많이 나눴고, 평소와는 다른 이 모습에 아내도 펑펑 울었다”며 “아내에게 ‘우리 집안에 며느리로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며, 여러 차례 응급 상황을 맞기도 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들인 김원보 작가·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이다. 장지는 부인이 묻힌 원주 흥업면 선영이다.
고인은 ‘황토’, ‘타는 목마름’, ‘오적’, ‘애린’ 등의 작품을 남긴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었다. 이 외에도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의 산문집을 남겼으며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 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꼽혔다.
고인은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과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만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1970년에는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 ‘오적’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1974년에는 민청학련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을 감형받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80년대부터는 저항시에서 벗어나 후천개벽의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해 1986년 ‘애린’을 기점으로 생명사상과 한국의 전통 사상 및 철학을 토대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91년 명지대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이 계속되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원제: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는 칼럼을 기고해 변절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 여파로 그의 구명 운동을 계기로 창설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작가회의)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해당 칼럼을 쓴 지 10년 후에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으나,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가 하면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깎아내리는 등 기존 태도와 엇갈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저작권자 © 퍼스널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