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서 경제부총리·한은 총재 역임…1995년 서울시장 당선돼 정치 입문
작성일 : 2022-06-23 16:38 작성자 : 김수희 (battie00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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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의료계에 따르면 조 명예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지난 2016년 2월 26일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재정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복지 증대와 지속 성장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미국에서 직접 배워 한국에 전파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노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3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4세.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92) 씨와 4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케인스 학파의 일원으로 ‘한국의 케인스’라고도 불렸던 고인은 정·관·학계를 아울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조 명예교수는 194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는 고향인 강릉에서 영어 교사로 교직생활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해 통역 장교로 발탁됐으며,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선발돼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던 고(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가르쳤다.
1960년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보오든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1968년부터 1988년까지 20년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맡아 강의를 했다.
고인은 자유방임적 시장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 학파의 일원으로 ‘한국 케인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국 경제학계에서는 ‘조순학파’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학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제자인 정운찬 전 총리와 집필한 ‘경제학 원론’은 여전히 경제학 교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988년에는 육사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인연을 맺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유로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내 관료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은 그는 사표를 내며 정치권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그는 정치인생을 시작하는데, 1995년 김영삼 정부 시기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돼 ‘서울 포청천’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서울시장 취임식 전날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내리는 등 다사다난한 임기를 보냈으나 무난하게 시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그는 1997년 15대 대선에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를 택했으나, 지지율이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당시 통합민주당이 여당인 신한국당과 전격 합당하면서 대선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고인은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당명인 ‘한나라당’은 그가 직접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1998년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한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파를 규합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에서 대패하며 사실상 정치 생명을 다하게 된다.
정치권을 떠난 그는 서울대와 명지대에서 명예교수직을 맡았으며 2003년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다. 또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으며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정책의 큰 틀을 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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