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1-24 19:23 작성자 : 김수희 (battie009@nate.com)

망한 휴대폰 가게 사장, 경찰 공무원 시험 낙방, 실적 없는 아파트 분양 사무실 상담직. 김필영 작가는 자신을 ‘실패 전문가’라고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떼어내면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다. 그러나 김필영 작가는 특출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 사람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이를 글쓰기로 발굴해내고 수 있다고 외친다.
글쓰기를 시작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처음 글을 쓰게 됐어요.
아이가 정말 빨리 들어섰어요. 첫째가 나고 바로 8개월 만에 또 둘째가 생겼거든요. 그렇게 결혼 3년 차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거에요. 제가 첫째와 둘째를 낳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더라고요. 과거의 저와 달리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돈이 꼭 있어야지 글을 쓰든지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요. 예전에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의 맨 밑 단계에 머물렀어요. 계속 실패만 하다 보니 당장 카드값도 없고 로션이나 양말을 살 돈도 없었어요.
휴대폰 가게에서 일도 해보고 경찰 공무원 시험도 떨어져 봤네요. 아파트 분양 사무실 상담도 하셨고요. 정말 많은 일을 해보고 실패하셨다고 하는데, 언제 제일 힘들었나요? 구체적으로 그때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20대 후반 그러니까 울산에 있다가 경기도에 아파트를 팔러 분양 사무실에 갔을 때예요. 경찰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돈을 다 날린 상태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갔어요. 한 달 치 생활비만 남겨놓고 간 거죠.
그때 돈도 정말 하나도 없고 경찰 공무원 준비할 때 만났던 사람은 대부분 경찰이 됐었죠.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어놓은 그 시간에 나만 외지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돈도 없는데 분양 사무실에서 계약이 안 되면 돈을 못 받잖아요. 그때 제가 반지하 방에 살았는데 정말 삶이 무기력해졌어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을 보면 안이 보이잖아요? 이러다가 점점 내가 투명해져서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음식물도 밖에 내다 버리지를 못했어요. 음식물을 계속 냉장고에 쌓아만 뒀죠. 밖에도 안 나가든 안 나가든 매일 맥주를 마셨어요. 그리고 ‘나는 정말 무능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다.’ 이런 생각을 6시에 퇴근해서 주저앉은 채 12시까지 계속했죠. 그렇게 자책하고 출근하기를 반복했어요.
한 3개월인가 4개월이 되니까 이제 돈이 정말 다 떨어져서 다시 울산에 내려갔어요. 울산으로 돌아와서는 예전에 하던 휴대폰 가게 일을 했어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제가 바보라고 확신했죠. 내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분양 사무실은 계속 돌아다니면서 계약을 따야 하는 일인데, 이 일에 자신이 있어서 상경하셨을 텐데 왜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셨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 주신 분이 처음이라 감사하네요. 저도 제가 계약을 잘 따낼 자신이 있었고, 사무실 팀장님도 제가 잘하니까 저를 경기도로 데리고 올라가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을 상대하고 대화하는 건 잘했던 것 같은데 분양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거죠. 조금 더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들어주기만 했는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고 나서서 팔려고 해야 했던 거죠.
큰 실패를 겪고 울산으로 내려가신 다음 무엇을 하셨나요?
결혼을 했죠. 휴대폰 가게 일을 하다가 일주일에 7일 소개팅을 나갔는데 이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국 결혼했어요.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에서 결혼했어요. 지금의 남편이 제 은인이죠.
제가 앞서 만났던 그 누구와 결혼했어도 작가가 못 됐을 거예요. 지금 남편이 나서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냥 조용히 누워서 응원만 해주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굉장히 힘을 주더라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서로 존댓말을 쓰고 있어요. 항상 ‘여보 응원해요.’ ‘여보 다 잘 될 거예요.’ ‘여보는 잘하잖아요. 뭐든지 잘하잖아요.’ 이렇게 말해줘요,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항상 응원을 해줘요.
글쓰기의 좋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면의 치유가 되고 나만의 이야기가 생긴 게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에요. 이 이야기를 강의도 할 수 있게 되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글을 쓰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돼요. 막 신나게 되는 건 아니고요. 여러 역할 사이에서 나의 중심을 찾을 수 있게 되고 정리가 되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내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하죠.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게 돼요. 글을 쓰면 기준을 세우고 내게 가장 중요한 것들, 덜 중요한 것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정리하면서 기분이 좋아져요.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팁이 있을까요?
일단 첫 문장을 쓰기가 어려우면 중간부터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이다. 설거지를 할 때였다’ 이렇게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아예 사건의 중심에서 글을 시작하는 거죠. 어짜피 구조는 마지막에 가다듬으면 되니까요.
주제를 정하기 어려우면 지금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것을 주제로 삼는 게 좋아요. 빨래나 회사 동료의 입, 셔츠에서도 찾을 수 있겠죠.
아이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육아를 할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계속 차선책을 찾는 자세가 중요해요. 보통 엄마들이 최고를 해 주려고 노력해서 힘들어 해요. 예를 들어 아이에게 저녁을 일찍 주는 게 좋죠? 근데 저녁 7시까지 저녁을 차리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정말 힘들게 식사를 차렸는데 아이가 안 먹으면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요? 이 최고의 엄마가 화가 나서 그냥 저녁을 먹지 말라고 가시 돋친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건 최악이잖아요.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그냥 내려놓고 조금 늦게 먹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늦게 주는 거는 사실은 최고는 아니죠, 뭐 8~9시에 저녁을 먹으면 안 좋겠죠. 그렇지만 아이 마음의 상처도 덜 줄 수 있고 자신의 감정도 덜 상하겠죠.
적당히 타협하는 게 육아에서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당히 대충 해야 할 것 같아요. 글쓰기도 너무 완벽하려고 마음먹으면 어렵더라고요. 글을 쓰고 싶지만 끝까지 잘 쓰지 못하게 돼요.
독서를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데,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5권을 추천한다면?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고등학교 때 읽은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에요. ‘셀린저는 셀린저다’라고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죠.
그리고 제게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요. 이 책은 필사까지 했어요. 문장의 리듬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책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책도 정말 좋아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빈 곳이 많은데 이렇게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책이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는 복복서가에서 나온 ‘완벽한 아이’가 좋았어요. 이 책은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던 내용을 담은 에세이라 굉장히 무거워요, 우리나라 에세이처럼 어떤 형식이 정해진 게 아니라 소설처럼 쓴 책이에요. 내용도 마음에 들고 그냥 다 좋았어요.
글쓰기 책 중에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이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는 책이죠. 글쓰기를 어떤 하나의 종교나 문화처럼 온몸으로 느끼는 책이에요. 기술적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정해주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줘요.
스티븐 킹이 쓴 ‘유혹의 글쓰기’도 아주 유명한 책이죠. 창작에 대한 작가의 굉장히 생각을 뾰족하게 적었어요. 직접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 책이에요.
지금 정기적으로 하고 계신 글쓰기 강연이 있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일단 세바시 랜드에서 글쓰기 기초 수업이 VOD로 제작됐어요. 이 강연은 구매를 하면 세바시 랜드에서 계속 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글로 성장 연구소’에서 ‘브런치 작가 되기’ 수업이 있고요. 또 ‘나 작가 프로젝트’라고 출간까지 이어주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긴 문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작가님은 짧은 문장을 좀 많이 선호하시는 것 같은데 어느 게 더 나은지 개인적인 견해를 여쭤봐도 될까요?
글쓰기 기초 수업 같은 걸 들으면 단문으로 써라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요. 이 말은 저도 하고 다른 수업에서도 많이 하죠. 하지만 이게 꼭 단문은 좋은 글이고 장문은 좋지 않은 글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초보자가 활용하기에 단문이 더 낫다는 의미에요.
장문으로 써도 아주 세상에 좋은 문장이 너무나 많아요. 하지만 글을 쓴 지 얼마 안 된 분이라면 장문으로 썼을 때 문장의 리듬감이 좀 처질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가 하나씩 있는 좋은 문장이 아니라 비문이 될 확률이 높아지죠. 그래서 저는 단문을 추천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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