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2-01 18:08 작성자 : 최정인 (jung_ing@naver.com)

구수환 감독을 일컫는 다양한 말이 있다. 종군기자,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60분’의 PD. 이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영화 ‘울지마 톤즈’와 ‘부활’의 감독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세상과 소통하던 구 감독은 이제 이태석 신부가 남긴 뜻을 세상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에게서 이태석 신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종군기자나 추적 60분을 찍으면서 위험한 일도 많이 하셨습니다. 또 지금은 이태석 재단까지 운영을 하고 계시는데,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동인이 있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순응하면서 살다 보니 모든 과정이 이어져서 이렇게 됐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어주는구나.’ 이런 생각도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고 재단 이사장까지 맡는 과정과 삶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사람이면 갈등이나 분노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모든 순간 이렇게 소리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던 알 수 없는 힘이 있던 것 같아요. 미신을 믿는 건 아닌데, 이런 느낌이 많이 듭니다. 누군가가 이끌어주고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저를 선택하셨을까 제가 이태석 신부님을 선택했을까. 처음에는 제가 그분을 선택해서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은데, 지금은 그분이 저를 선택해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이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추적 60분’이라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자체가 위험한 일이 아니었나요?
공영방송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 시간 동안 고발을 당하는 회사는 치명타를 입죠. 보통 15분 정도를 해도 많을 돈을 줘야 하는데, 반대로 60분 동안 고발을 당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방송을 못 나가게 하려는 많은 저항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하지 다른 이유 때문에 특별아 위험한 건 아닙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취재를 나오면 일단 못 들어오게 하죠. 허가나 허락을 받고 들어오라며 몸싸움은 보통 일어나죠. 그런데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법원이나 검찰에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죠. 그리고 제가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방송을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인간적인 갈등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런 압박에 굴한 적이 있으신가요? 또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그냥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거든요. 이분들은 방송국을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거거든요. 만약 저널리스트가 타협한다면 이분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그래서 원칙을 지키다 보니 좀 많이 힘들었죠.
요새 법무부 장관이 미행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죠. 저도 이렇게 미행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보면 하얀 상자가 집 안에 있는데 그걸 열어보면 아무것도 안 적혀 있고 가위와 칼이 들어 있었어요. 일종의 경고죠.
보통 조폭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위장을 많이 하잖아요? 그걸 고발하러 후배가 갇혀버린 일이 있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네 대씩 동원해서 전쟁하듯 싸우고 후배를 구출한 일도 있었어요. 이런 일은 저만이 아니라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들이라면 다들 겪어보죠.
이게 대단한 길이라기보다는 언론인이 가야 할 길인 거죠. 일반인이 문을 안 열어줘도 언론사에서 나왔다고 하면 일단 만나주기는 하잖아요. 국민을 대표하는 역할이라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인정받을 때는 거기에 따르는 책임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위험한 일이 있어도 일단 국민을 대표해서 가서 질문하는 것이니 당당해야 하죠. 저도 최근에서야 많이 깨우친 거예요. 이걸 한 이십 년 전에 제가 깨우쳤다면 어떤 저널리스트가 돼 있을까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죠.
저널리스트로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던 분이 어떤 사연으로 남수단까지 가서 취재도 하시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조명하는 일을 맡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감독한 ‘울지마 톤즈’가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영화가 됐죠. 덕분에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대중들을 처음으로 만나봤어요. 영화를 보고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많이 울어요. 그래서 왜 우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지금까지 이기적으로 살았던 자신을 반성했다는 거예요. 이 영화는 반성하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다들 반성했다고 하니 저는 당황했죠.
이 영화는 고발 영화에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국민에게 봉사를 한다고 하는데,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그 봉사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은 별로 반응도 없고 오히려 원래 잘하던 국민들이 반응을 보였어요.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저분들이 신부님의 삶을 계속 잊지 않게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어요. 어차피 소위 리더라는 분은 변화가 안 되는데,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기억하게 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2010년도부터 2014년까지 톤즈로 가서 다큐멘터리를 매년 한 편씩 제작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KBS에서 한 인물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4편까지 제작한 일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많은 분이 영화를 보고 좋아하시고 반응도 뜨거웠고 재단을 결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죠. 그 상황에서 남수단 정부와 우리나라 기획재정부가 MOU를 맺었어요.
그렇세 국민의 관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이태석 신부님 이름으로 된 병원을 짓자고 한거죠. 제가 직접 제안을 하고 병원을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다 좋아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해외 원조를 해야 하는데 기가 막힌 방법이었죠. 남수단 정부도 병원이 없으니 우리에게 목매달아서 병원을 짓는 데 도움을 구하고요.
이게 KBS와 함께 한 스마일 톤즈 프로젝트로 연결이 돼요. 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추진돼서 프로젝트가 운영됐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민간기구가 이태석 재단이에요. 원래는 이 재단에 우리 정부 대표와, 남수단 정부, KBS 대표로 제가 들어가서 대표단이 구성됐어요.
이 재단이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1억 달러짜리 병원을 지었거든요. 그래서 병원 조감도가 나오고 실사도 가고 했어요. 그렇게 구체화되던 중에 중단됐어요. 시기와 질투가 왜 이렇게 많은지 싶었죠.
그리고 남수단에 내전이 발발했어요. 그래서 3년 동안 교류가 완전히 끊겼죠. 근데 재단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국내에서 재단에 많은 분이 후원을 해주셨으니 재단을 계속 이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남수단과의 교류를 계속했죠. 그러다가 2019년 재단 이사장님이셨던 이태석 신부님의 형님이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제게 남긴 말이 있어요. 우선 재단을 계속 유지시켜 달라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렇게 만든 영화가 ‘부활’이었죠.
사실 저는 재단 이사장을 안 하려고 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뛰고 싶었지 이사장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이사장직을 고사하니 6개월 동안 공백기가 생겨서 재단 유지가 어려웠죠. 그래서 유가족분께서 제게 다시 재단을 맡아달라고 당부해서 결국 2021년부터 이사장이 됐습니다.
재단을 맡으신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원래 발만 담그고 있으려고 했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이태석 신부님의 삶으로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구체화해야 했죠.
우선 재단을 정비했어요. 일단 유가족분들에게 이사장이 되면 재단을 마음대로 운영할 거라고 했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이사장을 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유가족분들은 제가 이 재단을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단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어요. 이때 예전에 고발 프로그램을 했던 기질이 발휘됐죠. 그동안 NGO에서 후원금을 쓰는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첫 번째, 후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재단인데 후원자들과 국민에게 고발당할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어요. 재단에서 돈을 받아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단의 취지가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건데 이태석 신부님께서 돈을 받지는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사장이 된 다음에는 재단 정관에 이사장은 월급을 받지 않고 돈을 쓰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두 번째, 절대 재단을 홍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단을 운영하니 후원을 해달라고 홍보하는 것은 이태석 신부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열악한 현실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만을 생각하셨지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셨기 때문에 우리 재단도 그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들께 이태석 신부님을 알려야 되는데 그분처럼 생활하지 않으면서 이태석이라는 이름을 거는 건 안 될 일이죠. 재단을 운영할 때는 후원금을 철두철미하게 톤즈에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울지마 톤즈’가 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흥행에 성공했잖아요. 그 덕에 돈을 좀 버셨나요?
그때는 KBS에 있어서 영화 수익은 전부 KBS로 들어가고 저는 그냥 월급만 받는 직원이었죠. 돈 보다는 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하면서 가장 부담이 됐던 건 무엇인가요?
제일 우려했던 건 영화의 주인공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서 그분의 신생을 이야기하는 게 부담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울지마 톤즈’를 보고 이태석 신부님을 판단하실 텐데, 만약 제가 신부님의 일면을 놓쳐서 잘못된 내용이 나올 때 감당을 어떻게 할지 속으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만든 건 제가 종군기자를 했을 때 경험 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전쟁터가 무엇인지 아는데 왜 저 신부님이 전쟁터에 목숨을 걸고 들어갔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갈 정도라면 저분이 쓴 일기나 편지, 화면 속의 모습이 거짓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렇게 유가족분들에게 검증받고 톤즈에 가서 검증해가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떠올린 방법은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쓰신 것처럼 행복하다고 하면 이 내용은 맞는 것이고.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영화가 잘못됐으니 대중들에게 이실직고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외지에 있는 학교에 강연을 가거나 오지를 찾아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 실험이죠.
그렇게 하다 보니 얼굴은 항상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점점 힘들었어요. 개인적인 생활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삶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굉장히 행복해지더라고요. 이제는 아주 확신하게 됐습니다.
재단 운영을 하면서 후원금이 들어올 때 많이 기쁘셨나요?
기분이 당연히 좋죠. 재단을 이끌고 사업을 해야 하는 데 사업비가 필요하잖아요. 이 재단의 후원자가 안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가 잘못했던지 재단이 인정을 못 받는다는 말이고, 이때는 재단을 반납해야죠.
그리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후원금이 들어와서 연말에 후원자분을 알아봤어요, 그런데 개중에는 제게 이태석 신부님을 떠올리게 하고 충격을 주시는 분이 계셨어요.
어떤 분이 연말정산을 하려고 어머니께서 350만 원을 기부했는데 영수증을 받으려 한다고 편지를 부치셨더라고요. 그러면서 부끄럽다고 하시면서 어머니의 사연을 같이 적어 보내셨어요. 공주에 사시는 그분의 어머님은 매일 같이 자전거에 쌀 5kg을 싣고 운반해서 건당 1,000원을 모아서 재단에 기부했다고 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요즘에는 감자를 캐서 시장 좌판에서 팔아서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사실을 알고서 기부 영수증을 달라고 편지를 쓰는 게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그 사연을 보고 저는 놀랐죠. 제가 공주에 가겠다고 말했더니 그분 어머님께서는 이미 연세가 여든을 훌쩍 넘겼으니 오지 말고 그냥 열심히 일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는 저렇게 사회적으로 어려워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 지금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분을 실망시키면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태석 신부님의 신부님을 통해서 본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상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번트 리더입니다.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경청하고 진심을 다하는 지도자, 욕심이 없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이 네 가지 덕목을 갖춘게 신부님의 삶이었고 서번트 리더가 갖춰야할 조건입니다. 왜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 국경과 이념, 종교를 초월해서 빠져들까요. 바로 이 네 가지 덕목이 있는 삶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태석 신부님을 영웅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불교 신자지만 이분은 예수님의 삶을 행동으로 실천한 수도자일 뿐입니다. 어떤 한 종교가 뛰어난 게 아닙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종교, 의사, 선생님,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분의 삶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말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잖아요. 거기다가 희생까지 하셨어요.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처럼 좋은 사례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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