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12-22 16:20 작성자 : 최정인 (jung_ing@naver.com)
안필연 경기대학교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조소를 배운 후 환경조각가, 설치예술가, 행위예술가로서 활동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친 예술가다. 현재 그는 경기대학교 입체조형학과와 경기대학교 예술대학원 공공디자인학과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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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안필연 교수 블로그 갈무리] |
지금 경기대학교에서 입체조형과 공공디자인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이 분야를 선택해 공부하고 가르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출근해야 하는 어머니의 현실과 당신의 교육열이 미묘하게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저와 제 형제자매는 모두 학교 가기 전 아침에 피아노 교습을 받았어요. 두 언니는 학교에 빨리 가야 해서 먼저 피아노를 배웠고 그다음에서야 차례로 배우고 학교로 갈 수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피아노를 치다가 깜빡 졸았어요. 피아노는 그 고사리보다 더 가는 손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제 손과 건반이 눌리면서 굉음을 터뜨렸어요. 너무 놀란 저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죠.
그 후 콩나물 대가리 같이 생긴 음표는 제 인생에서 사라졌어요. 그때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이후로 저는 음악을 아예 잊고 살았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짝꿍이 나무로 된 가방을 가지고 왔어. 그 친구는 그것을 박스라고 불렀죠. 그리고는 그 박스를 열어 나에게 보여줬어요.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유화 물감이 있었고 테레핀과 린시드 기름의 향기가 있었으며, 돈 맥클린의 빈센트도 있었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화실에 갔어요. 화실에는 모란꽃이 풍성하게 꽂힌 화병이 있었고 햇살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짓던 서양순 선생님이 계셨죠.
서양순 선생님은 화려한 색감의 원피스를 입고 따스한 남도 사투리로 우리를 맞아주시던 멋진 분이셨어요. 그 서양순 선생님의 마음에 저의 마음도 녹아 미술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어쩌다 교편을 잡으셨나요?
사실 교수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IMF가 와서 우선 월급 주는 곳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교단에 서지 않았다면 아마 전업 작가가 됐을 겁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보이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예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이 제일 힘들었어요.
교편을 잡기 전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분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태양의 건축가라고 불리던 루이스 칸 선생님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그분 밑에서 직접 수학하지는 않았지만 제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셨어요.
현재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학생이 있나요?
말을 절대로 안 듣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갑니다. 재료로 돼지비계를 가져온 학생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어요. 단 몇 시간에 일어난 일을 그토록 대 서사시로 풀어낼 수 있는 그 상상력이 대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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