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12-30 18:33 수정일 : 2023-05-11 17:53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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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활동
◇ 성장배경과 검사로서 활약
윤석열은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설립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슬하에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직전인 5월 8일에 교내 모의재판에서 신현확 국무총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모의재판 이야기가 교내외로 퍼지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먼 친척이 윤석열을 피신하도록 했고, 3달 동안 외가의 친척 집에 피신한 일이 있었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석열은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을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갔다.
1999년 윤석열은 김대중 정부 실세로 꼽혔던 박희원 치안감을 소환해 뇌물수수 혐의 수사를 진행해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철저한 증거 수집과 심문으로 박 치안감은 영장실질심사 등을 모두 포기했다고 한다.
2002년 사표를 내고 1년 동안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재직했다가 다시 경력직 채용 형식으로 검찰에 복귀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있던 2006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자금 조성 정보를 입수하고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보고해 정몽구 회장의 구속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 이명박 정부 시기
2008년에는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사건'을 수사하던 정호영 특검에 파견 검사로 합류했다. 1999년 설립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 사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돼 있는지 수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루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수사에서 김경준 BBK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고 주장한 반면 이 전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김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증권거래법위반, 사문서위조 및 동 행사 등의 구속기소됐다.
이때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이명박 정부 때 좋은 보직을 받아 보은인사 의혹이 일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장을 맡은 박정식 검사는 대검 중수부 2과장으로, 차맹기 검사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연구관으로, 조재빈 검사는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로 발령을 받았다.
윤석열은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으로 부임했으며 이후 대검찰청으로 복귀해 범죄정보2담당관을 맡았다. 2010년에는 대검찰청 중수2과장, 2011년에는 대검찰청 중수1과장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과 함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국가정보원 심리정보국 소속 요원들이 국가 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대선에 개입한 사건이었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사를 밀어붙이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조선일보가 보도한 혼외자 스캔들이 터지고 청와대의 압박을 받는 등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때 윤석열도 상부에 보고·결재 절차 없이 압수수색과 혐의자를 체포한 책임으로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2013년 국정감사에서 윤석열은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그는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하던 중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직원들을 빨리 돌려보내라는 지시가 계속 있었고 국정원 직원들을 석방하고 압수물을 돌려주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밝혔다.
이 국정감사에서 윤석열의 유명세를 키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다”는 발언이 나왔다.
이후 보고·결재 절차를 위반한 책임으로 윤석열은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윤석열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에서 대구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보내지고 대전고등검찰청으로 발령받는 등 좌천성 인사가 뒤따랐다.
그러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으로 드러나며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윤석열은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담당하던 박영수 특검으로부터 수사팀장으로 지명돼 파견 검사 신분으로 특검팀에 합류했다.
4개의 특검팀 중 4팀의 팀장을 맡은 그는 뇌물죄 관련 대기업 수사를 담당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의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찬성 결정 과정에 대한 수사도 그의 지휘하에 진행됐다. 결국 그는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 이 부회장을 구속하는데 성공했다.
특검 수사 기간 종료 후에도 파견 검사로 남아 재판까지 책임졌으며,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의 유착관계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영재센터와 정유라의 승마 지원이 뇌물죄임을 재판부에서 인정받는 데는 성공했다.
◇ 문재인 정권 출범과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이러한 선임 배경에는 윤석열이 최순실 게이트의 추가조사 및 공소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실제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역시 국정농단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유지라고 생각한다”며 “그 점을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선임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급임에도 불구하고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며 지검장급으로 환원하는 등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국내 특수·공안 사건을 많이 다루는 서울중앙지검장직은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빅2로 불리는 요직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후 그는 서울중앙지검 조직 개편으로 그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 주요 국정 과제인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과 ‘MB 블랙리스트’(이명박 정부 비판적 문화·연예계 인사 배제명단) 의혹 등 국가정보원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한편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비리 등 여러 의혹을 총체적으로 수사했다.
이러한 수사 활동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포함한 법관 14명 기소, 현직 판사 66명에 대한 비위 통보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다만 국정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수사선상에 오르는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지며 과잉 수사 논란이 있기도 했다.
◇ 검찰총장 임명과 문 정부와의 결별
2019년 윤석열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당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이뤄진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의 반발이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엄정하게 수사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청와대나 정부, 집권 여당 등에서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이를 원리원칙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에 착수해 조 전 장관이 임명 한 달여 만에 사퇴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과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을 파헤치는 등 문재인 정권과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그는 ‘검언유착’ 사건을 두고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도 갈등을 이어갔다. 검언유착 사건은 채널A 소속이었던 이동재 전 기자가 금융사기로 복역하고 있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접근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비위 사실을 밝히라고 회유한 일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의 측근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부산고검 차장) 등 검찰이 이 전 기자와 결탁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과 언론이 유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사건 수사를 두고 다툼이 격해지자 결국 추 전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그를 수사에서 배제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15년 만의 일로, 윤석열은 지시를 수용하고 수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윤석열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입법 추진에 반대하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며 야권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사퇴 후 잠행을 이어가다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대선 출마 선언 두 달 정도 뒤에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하태경 의원 등과의 경합 끝에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됐다.
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접전 끝에 0.73%포인트 차로 앞질러 승리를 거뒀다. 윤석열의 득표율은 48.56%였으며 이 후보의 득표율은 47.83%였다. 두 사람 간의 표차는 무효표 30만 7,000여 표 보다 적은 24만 7,000여 표로, 윤석열은 헌정사상 가장 적은 득표차로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 정부 출범과 활동
5월 10일을 기해 임기를 시작했으나 총리와 장관 인선이라는 암초에 걸려 제대로 된 내각을 갖추지 못한 채 새로운 정부를 출범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전임 문재인 대통령 정부인사와 국정을 운영하게 됐다. 국무회의 개의와 의결을 위한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얼마간은 전 정권의 장관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평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유명한 만큼 원리원칙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신이 뚜렷하고 정면 돌파를 자주 하는 강골 검사로서, 평검사 시절부터 굵직한 사건을 맡아 능력을 검사로서의 입증하기도 했다.
술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는 학습 시간이 짧아 1차에 붙고 2차에 낙방하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사법고시에 떨어졌을 때는 시간 낭비를 줄이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법학 석사학위 취득했으며, 결국 9수 끝에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말솜씨가 좋고 유머 감각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 부장검사는 “부부 동반으로 윤석열과 모임을 한 뒤로 부인이 ‘오늘은 (윤석열) 지검장이 어떤 재밌는 얘기를 해줬느냐’고 물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평소 후배들에게 직접 만드는 요리를 대접하는 등 주변 사람을 챙기는 책임감 있는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잦은 실언과 실수로 구설수가 많다. 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1일 1실언’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주 120시간 노동’,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관련 발언, ‘부정식품 발언’, ‘전두환 옹호성 발언’, ‘개 사과 사진’, ‘손바닥 王자 논란’ 등으로 논란이 잦았다. 또한 아내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의혹이나 장모의 비리 의혹 등 ‘가족 리스크’ 급부상이 평판에 악영향을 끼쳤다.
경력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1994년 제23기 사법연수원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96년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1997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99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2001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2002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2003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2005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검사
2006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부부장검사
2007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2008년 3월~2009년 1월 제46대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 지청장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2010년 대검찰청 중수2과장
2011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2012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2013년 4월~2014년 1월 제55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지청장
2014년 1월~2016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2016년 1월~2017년 5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
2017년 5월~2019년 7월 제59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2019년 7월~2021년 3월 대검찰청 검찰총장
가족관계
아내
학력
충암고등학교(졸업)
서울대학교(법학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법학과/석사)
“ 저작권자 © 퍼스널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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