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Home > 기업인

[퍼스널 포커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작성일 : 2021-12-23 17:35 수정일 : 2022-05-19 17:39 작성자 : 김수희 (battie009@nate.com)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카카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범수는 카카오 창업자이자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이다. 동시에 비영리재단 카카오임팩트와 개인 사회공헌재단 브라이언임팩트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의 성공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확장해 유료 콘텐츠, 모빌리티, 게임, 결제,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규모를 확장하면서 상당수 계열사가 적자를 기록하는 등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까지 번져 도를 넘는 독과점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는데, 이 역시 김범수가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받는다.


활동
◇ 대학 시절과 삼성SDS 입사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범수는 어려운 형편으로 다섯 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재수생 시절 그는 혈서를 써가며 독하게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재수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한편 고스톱과 포커, 당구, 바둑 등에 몰두했다고 한다. 학업 역시 4년 안에 학사와 2년 안에 대학원 석사를 마쳤을 만큼 큰 무리 없이 소화했다.


김범수는 1998년 석사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전문연구원으로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에 입사했다. 그는 삼성 SDS에서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닦았다. 입사 직후 양식 편집기인 '폼 에티터'를 개발한 그는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PC 통신 '유니텔'의 설계와 개발을 맡기도 했다.

당시 김범수는 삼성SDS에서 근무하면서 입사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GIO)를 비롯해 문태식 카카오VX 대표, 김정호 전 NHN 한게임 대표, 남궁훈 카카오 대표이사 내정자 등과 인연을 맺었다.

김범수는 삼성SDS에 재직하면서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에 합세해 1998년 한양 대학교 앞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부업 삼아 열었다.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넘버원을 세운 그는 한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미션넘버원에서 모은 자본은 훗날 게임회사 한게임을 세우는데 쓰이기도 했다.

◇ 한게임 창업과 NHN 출범
1998년 삼성SDS를 그만둔 김범수는 같은 해 11월 회사 후배였던 남궁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과 함께 한게임을 세웠다. 한게임은 웹상에서 게임을 실행하는 기술을 도입해 창업한지 1년 6개월 만에 1,00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끌어모으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국내 최초의 게임포털로 자리 잡았다.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이 창업한 네이버컴과 합병해 2001년 NHN을 출범하고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초창기 네이버 검색 엔진과 서버에는 많은 비용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한게임이 게임 내 재화를 판매해 얻은 수익으로 충당했다.

2002년 NHN을 코스닥에 상장하는 데 성공한 김범수와 이해진은 2003년 '지식in' 서비스를 선보이며 네이버가 국내 포털 1위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2004년 NHN 단독대표를 맡았다가 2007년 NHN 비상임이사와 미국법인대표를 맡았다. 그는 2009년 돌연 NHN 내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으로 건너간 김범수는 몇 차례 사업을 벌였으나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 카카오톡의 성공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2006년 12월 김범수는 대학 후배인 이제범과 공동으로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세웠다. 사실상 김범수가 주도해 설립한 아이위랩은 4년 가까이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2010년 3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간편인증과 연락처 기반 친구찾기, 세련된 디자인 등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출시 하루 만에 앱 시장 1위에 오르며 가입자 3만 명을 모았다. 6개월 후에는 가입자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때 아이위랩은 회사 이름을 지금의 '카카오'로 바꿨다.

초창기 카카오톡은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던 반면 매달 서버에 10억 원씩 투자해야 하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김범수는 이전부터 인터넷 사업을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신념만으로 투자를 계속했다. 카카오톡은 한때 김범수가 투자하던 개인 자산마저 고갈된 상황에 몰렸다. 2011년까지 2년 동안 210억 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하던 카카오톡은 2012년 게임업체인 애니팡과 중계 서비스 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해 90억 원에 영업이익을 달성한다.

여기에 중국의 텐센트, 국내 온라인 게임사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제3자 유상증자 형태로 투자금을 지원받아 카카오는 기사회생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13년 카카오는 광고에 약 580억 원에 달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그해 550억 원의 수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결국 카카오톡은 전 세계 최초로 메신저를 활용한 수익 창출 모델을 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카오톡의 성공은 메신저 시장을 활성화하는 신호탄이 됐다. 네이버는 일본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라인 메신저를 선보였으며, 카카오톡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메신저 운영 노하우를 익힌 중국의 텐센트는 메신저 QQ를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한 이스라엘 기업 재빨리 역시 메신저 회사를 만들었으나 페이스북이 이를 인수해 페이스북 메신저를 선보였다.

김범수는 2014년 다음과 카카오를 합병하는 데 성공했다. 명목상으로는 다음이 카카오를 인수했지만 지분율을 따지면 카카오가 다음을 이용해 우회상장을 한 것이다. 공식 합병 이후 회사명은 다음카카오로 변경됐으나 2015년 9월에 다시 회사명은 카카오로 돌아왔다.

김범수가 이끈 카카오는 2019년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을 기록해 카카오톡이 나온 지 9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대기업 기준인 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을 달성한 국내 IT 기업은 카카오가 처음이다.

이후 카카오는 카카오페이를 출시해 전자결제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2015년에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시작으로 카카오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분야로 사업을 시작했다. 카카오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이 선점하던 시장을 낮은 수수료로 장악하거나 기존 업체를 인수해 기업의 규모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확장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는 연예기획, 부동산, 가상화폐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었는데, 2021년 상반기 기준 카카오 계열사 수는 117개에 달했을 정도다. 이는 SK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한편 김범수는 두 자녀에게 500억 원이 넘는 카카오 주식을 증여했는데, 이들이 카카오의 지주회사 격인 케이큐브홀딩스에 다닌다는 사실이 확인돼 재벌식 승계 작업에 착수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케이큐브홀딩스는 두렷한 자체 수익원이 없으나 카카오 지분 10.6%를 보유하고 있으며, 김범수가 지분 100%를 보유한 업체다. 케이큐브홀딩스는 2020년 83억 원의 배당수익에도 11억 원의 손실을 냈으며 김범수의 막냇동생이 퇴직급여로 13억 9,600억 원을 수령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태로 의심을 사고 있다.

2022년 3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한 그는 남궁훈 대표이사에게 힘을 실어주며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으로서 카카오 재도약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평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한국 최고 부자로 등극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데, 카카오 직원 대부분이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 사실을 발표 당일에 알았다고 할 정도다.


평소 직원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격식 없는 소탈한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카카오 설립 초기부터 수평적 기업 문화를 위해 직원들을 영어 호칭이나 별명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T500'(Thursday 5:00)을 진행하는 등 자유로운 업무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IT 업계 인사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맺는 등 친화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김정주 넥슨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는 서울대 동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와도 잘 아는 사이다.

대외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의사를 자주 표명했다. 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거 나은 세상을 꿈꾸며"라고 적혀있을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자발적 기부 운동 '더기빙플레지'에 참여해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편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 행보로 비판을 받고 있다. 김범수를 중심으로 한 카카오 지배구조는 다른 대기업처럼 순환출자는 없지만, 카카오가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며 인수와 분사 등을 거듭해 그 규모를 키우고 사업 진출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김범수가 카카오의 지분 대부분을 차지한 만큼 그의 구상이 사업에 잘 반영되지만 견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평이다.

경력
1992년 3월~1998년 2월 삼성SDS
1998년 11월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설립
2000년 7월 네이버컴 공동대표이사 사장
2001년 11월 NHN 공동대표 이사
2004년 1월 NHN 대표이사 사장
2007년 1월 NHN USA 대표
2007년 아이위랩 대표
2011년 카카오 이사회 의장
2011년 7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2014년 10월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2015년 9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
2016년 3월~ 제1대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2017년 2월~ 2018년 8월 카카오브레인 대표이사
2018년 4월~ 카카오임팩트 이사장
2021년 2월~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2021년 6월~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가족관계
아내
1남 1녀


학력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졸업)
서울대학교(산업공학/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산업공학/석사)


수상내역
2003년 대통령표창 소프트웨어산업발전 유공자
2012년 제6회 포니정 혁신상
2013년 제22회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상
2015년 제60회 정보통신의 날 동탑산업훈장

“ 저작권자 © 퍼스널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업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