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3-17 18:52 작성자 : 우세윤 (dmaa7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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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자 조선노동당 총비서다. 경제적으로 붕괴된 북한을 이끌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활동
◇ 권력 세습 이전
권력 세습을 위해 본격적으로 대외에 나서기 전까지 김정은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다만 어린 시절 '박운'이라는 가명을 쓰고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 'Liebefeld-Steinhölzli Schule'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생활할 당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주앙 미카일로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 성적이 꽤 좋았으며 수학 과목에서 두각을 보였다.
2005년 북한에 귀국한 그는 전사한 대남 공작원의 아들로 신분을 위장해 인민군 하전사에 들어가 1년간 군 생활을 했다. 군사 체험 이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 포병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전까지 장남인 김정남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북한을 이끌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 후계자 등극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김정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0년 9월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에서 얼굴을 비춘 그는 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외부에 권력을 승계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줬다.
◇ 북한의 새로운 독재자
김정은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11년 12월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며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했다. 김정일이 마련한 체제 안에서 순조로운 계승이 이뤄져 인사를 빠르게 정비할 수 있었다. 그는 차기 후계자로서 불안정한 지지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자를 숙청하며 기반을 다졌다. 북한을 이끄는 조선노동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그는 끝내 2017년 제6차 핵실험으로 핵무기를 개발에 성공했다.
임기 초기에는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과감한 도발을 이어갔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위협으로 보고 대북제재를 펼치자 국제사회 무대에서 밀려나며 괴멸적인 경제적인 타격을 입어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고비를 넘기기 위해 대화에 나서는 등 전형적인 화전양면 전술을 펼쳤다.
북한 선수단을 파견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기 시작했다. 개회식 남북선수단 공동입장과 김정은 친서 전달 등 남북 대화 기류가 급물살을 탔다. 이어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초청을 받아 방중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후 2018년 4월 2018 제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때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 냈으며 김정은은 핵무기보다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핵무기 포기 의사를 보였다. 이어 2018년 5월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소강상태였던 대화의 불씨를 되살렸다.
판문점 회담 한 달 후인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나 눈에 띄는 큰 진전은 없었다.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했는데, 그는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연내 서울 방문을 추진한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 답방은 무산됐고 2019년 북미정상회담 역시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김정은은 강경 노선으로 다시 선회해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평가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시 권력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순조롭게 조선노동당을 휘하에 두고 숙청으로 권력 기반을 다져 정치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정권을 잡은 초기에는 통제 불능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호전적인 외교 전략을 펼쳤다. 김정은이 권력을 굳히는 과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무력 투사에 목을 매 '로켓맨'(Rocket man)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 성향은 대북제재로 경제적 위기가 극대화되자 잠시 가라앉았으나 두 차례에 걸친 북미정상회담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되면서 다시 공격적인 위협을 펼치고 있다.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 에멘탈 치즈를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북제재로 에멘탈 치즈를 수입할 방법이 없어지자 직접 프랑스에 전문가를 파견하려 한 사실이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를 통해 전해진 바 있다.
경력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인민군 대장
201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12년 4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조선노동당 제1비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2014년 3월 제 13기 최고인민위원회의 대의원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조선노동당 위원장
2016년 6월 국무위원회 위원장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총비서
가족관계
아내
2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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