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31 17:49 수정일 : 2022-07-27 15:11 작성자 : 김수희 (battie00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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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이상민은 윤석열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활동
충암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2년 28세의 나이로 판사로 임용됐으며, 서울민사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등을 거쳐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이어 법원행정처 발령을 받은 그는 법무담당관, 기획담당관을 역임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에 다시 돌아온 그는 지적재산권 전담부에 근무하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으로 승진해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장으로 부임했다. 그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끝으로 15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쳤다.
퇴직 후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 변호사, 해양경찰청 자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그는 국민은행 로꼬 이익분배금 사건, 삼성-애플 간 디자인 특허 소송 등 여러 굵직한 민사소송을 맡았다. 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사법연수원 등에 출강하는 한편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MBA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국민의힘의 전신에 해당하는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치권에 입문한다.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는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직을 수행했고, 2014년에는 방송통신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청구인-피청구인 양측이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조정제도’를 처음 도입하고, 행정심판위원회의 처분 결과를 미루는 행정 기관에 배상책임을 무는 ‘간접강제제도’ 등을 만들어 행정심판제도를 손봤다. 그러다 그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둔 채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퇴임 이후 그는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윤석열 대통령의 살리는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사회위원장직을 맡으며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그를 첫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지목했으나 국회는 상습체납, '아빠찬스' 의혹, 친일파 개산 환수 조치 반대 소송 변호, 사외이사 기업 자회사 변호 등 다양한 논란과 의혹으로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무부처 장관을 공석으로 둘 수 없다며 장관직 임명을 강행했다.
평가
하급자를 하대하지 않으면서 격의 없는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다 변호사가 된 법조인이지만 행정경험까지 있는 독특한 경력이 있다. 다만 재난 안전 대응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현재 건국대 일반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박사과정에 휴학 중으로 재난 안전 대응 전문 능력은 아직까지 미지수라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충암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후배로 사이가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이상민의 장관 임명을 두고 윤 대통령이 측근 챙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판사 재직 시절부터 자동차세를 상습적으로 체납해 모두 11차례 차량을 압류당한 사실이 밝혀져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친일파 재산 환수 조치에 저항하는 소송의 변호를 맡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친일파 방태영의 후손 9명이 물려받은 재산 중 일부가 2000년 친일 재산 귀속법에 의해 국가 소유가 되자 이들은 '일본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란 부분이 불명확하다'며 소송을 걸었으나 당시 법원은 이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상민은 자신이 변호를 맡거나 법정에 나가지는 않았으며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올려 법원을 압박하는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소송 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원고들이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2012아23) 사건에도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이상민은 이름만 올렸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해당 재판의 성격과 쟁점이 뭔지 전혀 잘 알지 못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자신이 사외이사 역임하던 AK홀딩스의 자회사인 '제주항공' 사건의 변론을 맡은 사실이 드러나 경영진의 업무 집행을 감시하는 사외이사로서 도리어 경영진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것이 부적절한 행위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 사건을 심판한 기관이 그가 위원장직을 맡았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라는 사실이 밝혀져 전관예우 논란까지 일었다.
아들과 딸의 '아빠찬스' 논란을 빚었는데 이상민이 사외이사로 머무는 회사에 아들이 입사한 바 있으며 딸 역시 인턴 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는데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상민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그의 딸은 국회 의원실 인턴으로 근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딸이 자신이 위원으로 활동하기 전에도 기록에 남지 않는 무급 형식으로 인턴을 했으며 자신이 위원으로 있던 시기와 겹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국내 제약회사 영업팀에서 학생 인턴십에 참여했는데, 이상민은 당시 그 회사의 1심 소송을 맡고 있었다. 이에 아빠찬스를 활용해 인턴직을 따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제약회사 측은 "고등학생 대상으로 인턴이나 체험활동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와 함께 두 자녀가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구매 대금을 증여하고 3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인 간 거래로 빌릴 때 보증까지 서 준 바 있다. 두 자녀가 이 아파트를 구매했을 2019년 12월 당시 해당 아파트의 가격은 11억 원에 달하며, 2022년 4월 기준 재건축 기대감으로 이 아파트의 호가는 15억 원까지 상승했다.
그의 배우자 정 모 씨가 친오빠의 숙박업소에서 번역비로 2억 5,000만 원에 달하는 급여를 받아 물의를 빚었다. 비전공자인 50대 주부가 갑자기 취업을 한 배경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으며 2018~2020년 동안 친오빠의 가족이 운영하는 두 회사로부터 4,875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별개로 정 씨는 2017~2020년 4년 동안 약 1억 9,170만 원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
정 씨는 동일 기간 일을 하면서 일부를 근로소득으로, 나머지는 종합소득으로 신고했는데 이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정 씨가 번역 업무로 급여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였으나 이 회사에 번역 및 통역 서비스업이 추가된 시점은 2019년이었다.
경력
1989년 제18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2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2000년 8월~2002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법무담당관, 서울고등법원 판사
2002년 2월~2003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담당관
2004년 2월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지원장
2004년 2월 원주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05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7년 2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2010년 3월~2012년 2월 사법연수원 민사변호사 외래교수
2010년 9월~2013년 2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강사
2015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2019년 7월~ 사단법인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외협력특별보좌관
2022년 5월~ 부총리 겸 행정안전부 장관
가족관계
아내
슬하
1남 1녀
학력
충암고등학교(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MBA/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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