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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포커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작성일 : 2021-11-19 18:26 수정일 : 2022-08-25 11:43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사진=연합뉴스]


송영길은 서울시장 후보이다. 2022년 3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대선 패배를 설욕하고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의 승리에 일조하기 위해 서울시장직에 도전했으나 오세훈 국민의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활동
◇ 학생운동·민주화 운동 시기
1984년 학도호국단 폐지 후 연세대학교 첫 직선제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장관 등과 함께 학생 신분으로 민주화 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이때 1984년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 주모자로 안기부에 구속돼 병역이 면제됐다.


졸업 후에는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노동운동에 투신해 인천지역에서 택시 면허 취득 후 택시운전사로 일했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노조를 결성해 조직화했다. 이후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하고 전국택시노조연맹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인천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펼쳤다.

◇ 정계 데뷔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99년 386세대 정치인의 첫 주자로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아 인천 강화·계양구-갑 지역구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옷 로비 의혹이 터지면서 안상수와의 경합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16대 총선에서 강화군과 서군이 합쳐진 인천 계양구에서 안상수를 상대로 설욕에 성공해 2000년 첫 금배지를 달았다.


2002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수행하는 현역 의원이 없는 상황에 수행실장을 자원해서 맡았다. 당시 노무현과 정몽준 전 의원이 후보 단일화를 했으나 이내 정 전 의원이 지지 선언을 철회한 상황에서 둘의 만남을 주선했다. 정 전 의원이 지지 철회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노무현 지지층을 결집해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에 힘을 입어 2003년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을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2004년과 2008년 재선과 3선에 연달아 성공했다. 2004년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 위기 때는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를 접한 이라크 의회가 초청을 보냈고 이를 수락하기도 했다.

◇ 인천광역시장 재임기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 안상수 인천시장(현 국민의힘 의원)과 경합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취임 전 인천시 부채 상황은 7조 5,000억 원 규모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회계 방식을 영업부채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바뀌자 9조 4,550억 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감사원이 밝혀낸 전임 시정부가 숨긴 빚과 분식결산, 부채 돌려막기, 편법 출자 등을 밝혀내 총부채가 11조 7,300억 원으로 늘어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 준비 규모를 전체 사업비 2조 5,805억 원에서 1조 9,447억 원으로 6,358억 원 줄였으며, 인천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유치해 투자유치 실적을 크게 올렸다. 이와 함께 인천 종합 터미널 부지를 롯데쇼핑에 9,000억 원에 매각했다. 그 밖에 인천도시공사가 시행하는 10조 원 규모의 16개 사업을 취소 또는 축소하고 송도파크호텔, 영종보금자리, 검단산업단지 등 시 소유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했다.

이러한 송영길의 노력으로 인천시 매년 이자만 4,000억 원 규모였던 부채를 2013년부터 감소세로 돌려놓았다. 다만 이를 위해 인천 종합 터미널 매각 시도가 무리했다며 역풍을 맞았으며,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재검토 취소 등으로 인해 시정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인천시장 재임 중 러일전쟁 때 인천 제물포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선 바랴그호의 깃발을 러시아에 반환하고 기념시설을 건립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송영길에게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인 드루쥐비 훈장을 수여했다.

송영길은 2014년 인천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유정복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중국 칭화대학교로 1년 동안 유학을 한 후, 2015년 10월 서울 여의도에 ‘먹고사는문제연구소’를 열어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 20대·21대 국회의원 시절
2016년 송영길은 다시 본래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2017년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선거캠프에 합류해 총괄선대본부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주장에도 힘을 쏟아 대선과 탄핵 현안에 두루 성과를 내 두각을 드러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특사로 임명돼 러시아를 직접 방문했다. 이후 같은 해 8월에는 한국-중국 관계와 한국-러시아 관계에 기반한 북방경제를 전담하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신북방정책을 추진했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추진 프로젝트, 유라시아 철도 사업 추진 프로젝트, 개성공단과 나진 하산 프로젝트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했다.

2018년 7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을 두고 이해찬과 김진표와 경합을 벌였다. 이때 당 대표 경선에 나가기 위해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사임했다. 그러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밀려 지지율 2위의 성적을 거두면서 낙선했다.

2019년에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당내에서 빈축을 샀다. 정부 정책과 당론에 반하는 이야기를 내부 논의 없이 외부에 공개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0년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인천광역시 지역 선거를 총괄했다. 인천 지역에서 13석 중 11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고 본인의 지역구에서도 당선되는 성과를 냈다. 이로써 송영길은 5선을 달성해 인천지역 최다선 의원이 됐다.

제21대 국회 전반기에 외교통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고 2021년 4월 더불어민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해 홍영표, 우원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 더불어민주당 대표
2005년, 2016년, 2018년 세 차례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진 송영길은 2021년 새롭게 당 대표로 당선됐다. 송영길은 당 대표로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를 수습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책임을 맡게 됐다.


전당대회에서 송영길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쇄신론’을 꺼내며 극성 친문 지지층 중심이 아닌 일반 민심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기조로 당을 운영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 대선 패배와 서울시장 도전
20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당대표로서 더불어민주당을 지휘하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 힘썼으나 결국 패퇴하고 만다. 그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임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당 쇄신과 재정비를 위해 윤호중 의원을 필두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송영길은 2022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대선 패배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서울시장 출마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이러한 의견에 대해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직을 두고 격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한 ‘험지’에 자원해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주장했다. 당초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박영선 전 장관을 면담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송영길 전 대표의 참전으로 인해 당내 갈등으로 불거졌다.

송영길 전 대표는 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와 일부 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상대책위원회의 격론 끝에 서울시장직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는 2022년 3월 대선 두 달여 만에 치러지는 만큼 ‘대선 연장전’과 같은 양상을 보였다. 송영길 전 대표의 득표율은 39.23%(173만 3,183표)에 그친 반면 오세훈 후보의 득표율은 59.0%(26만 8,277표)로, 큰 격차를 보이며 선거에서 패배했다.

평가
1960년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 생활 중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사람을 일컫는 ‘386세대’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정치경력으로 경쟁력이 있는 인사로 꼽힌다.


인천시장 재임 당시 시의 부채를 줄이는 등 추진력을 보여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우수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북한, 중국, 러시아를 아우르는 북방 문제 전문가로도 평가받는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활동해 ‘범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다만 계파색이 옅고 정책에 대한 개인 의견이 강한 편이다. 초 재선 시절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언론관이 아쉽다”고 말한 바 있으며, 2006년 한미 FTA에 대한 당내 반발에 대해 찬성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부 정책이자 당론인 탈원전 정책에 대해 속도조절론을 펼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선거에서 활동했으나 계파색이 옅어 친노·친문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인기에 힘입어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열린우리당이 안팎으로 비판을 받자 열린우리당에서 떠난 행태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185㎝에 달하는 키와 넓은 어깨, 우직하고 고집 있는 성격이 맞물려 ‘황소’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력
1984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1997년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
2000년 5월~2004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2002년 제16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2001년 새천년민주당 노동특별위원회 위원장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단준비위원회 중앙위원
2003년~2004년 열린우리당 시민사회위원회 위원장
2004년 5월~2008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2004년~2008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부회장
2004년~2006년 제17대 국회 한·프랑스 의원친선협회 회장
2004년 제17대 국회 이라크 내 테러 집단에 의한 한국인 피살사건 관련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간사
2006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2006년~2007년 열린우리당 한미FTA특별위원회 위원장
2006년 제17대 국회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유치 특별위원회 위원
2006년~2008년 제17대 국회 한미FTA체결대책특별위원회 간사
2007년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2007년~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2008년 5월~2010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구을/민주당)
2008년~2010년 민주당 최고위원, 제18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
2010년 7월~2014년 6월 제5대 인천광역시 시장
2016년 5월~2020년 5월 제20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구을/더불어민주당)
2017년 2월~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총괄선대본부장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특사
2017년 8월~2018년 7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2020년 5월~ 제21대 국회의원 (인천 계양구을/더불어민주당)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가족관계
아내
슬하 1남 1녀


학력
광주대동고등학교(졸업)
연세대학교(경영학/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중어중문/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일본학/학사)


수상내역
2007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5등급) 훈장
2010년 자랑스런 연세 상경인상
2011년 아시아생물공학연합체 공로상
2013년 제21회 대한민국 VE 콘퍼런스 최고 경영자상
2013년 러시아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
2017년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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