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3-04 19:09 수정일 : 2022-08-26 09:04 작성자 : 신준호 (shinister0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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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
안철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 국민의당 후보로 나섰으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해 대선 승리의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공동정부 구상을 다지고 있다. 이후 김은혜 의원의 출마로 공석이 된 성남 분당구갑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활동
◇ 컴퓨터 백신 개발과 경영인으로서 활동
안철수는 류마티스내과의 교수를 목표로 기초의학 연구를 위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평소 기계에 대한 관심이 대학원 생활 중에 컴퓨터를 구해 요긴하게 사용했다. 1988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침투되자 이를 고치기 위해 독학으로 백신을 개발에 성공했다.
군의관으로 병역을 마친 그는 의과대학 교수직을 내려두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몰두한다. 안철수는 세계 최초의 백신이 1987년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998년 6월 V3 개발에 성공해 처음으로 배포했다. 그러나 후원단체 없이 컴퓨터 백신 개발을 이어가기 힘들어지자 1995년 3월 직접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경영에 뛰어들었다.
사업 경험이 없던 그는 처음 4년간 경영에 골머리를 썩였다. 사무실을 구할 돈도 없어 집에서 일을 했으며, 4명뿐인 직원의 월급을 주기 힘들어 부모님께 도움을 구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철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경영학을 배워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97년 1,000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세계적 보안솔루션업체인 미국의 맥아피(Mcafee)의 제의를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 CIH 바이러스, Y2K를 극복해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 매출 100억 원을 넘겼고, 국내 IT 기업 1위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2005년 그는 공부를 위해 대표직을 사임하고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2008년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KAIST) 교수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내는 등 교육자로서 활동했다.
◇ 정치권 입문과 대권 도전
의학자에서 프로그래머, 성공한 벤처기업가, 기술경영전문대학원(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내는 등 다채로운 그의 이력이 2009년 6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를 통해 알려지며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법륜스님, 방송인 김제동과 청춘콘서트를 진행한 일을 계기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정치권에 입문했다.
2012년 9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그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함께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혔다.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마찰을 빚던 그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에서 앞서나가자 2012년 11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에 사퇴하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어 2013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60.46%의 득표율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한 그는 당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한 문재인 대표 체제와 갈등을 빚던 그는 2015년 4·29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그는 결국 2015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해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했다. 안철수는 서울 노원구 병에 당선됐으며 국민의당은 호남권의 압도적인 지지로 의석 38석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어느 당도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으며 이는 의정사 16년 만에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당제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2016년 당대표가 된 지 반년이 되지 않아 리베이트 파문이 일면서 당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된다. 이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1.41% 득표율로 문재인, 홍준표 당시 대선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7년 안철수는 국민의당 대표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해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으로 합당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과 합당은 국민의당 내 호남계 인사에 강한 반발을 사 분당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바른정당과 합당을 강행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한 그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는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19.55% 득표율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패배한다.
서울시장 선거에 낙선한 그는 2018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독인 근교의 막스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연수를 떠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법·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은퇴를 번복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정계 1월 2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2020년 1월 19일 귀국했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그는 2020년 2월 23일 앞서 2016년 창당한 당명을 그대로 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 대표로서 21대 총선에서 지지율 6.8%를 확보한 그는 의석 3석을 배분 받아 원내 4당으로 자리매김했다.
21대 국회에서 보수 야권과의 접점을 늘리던 그는 중도실용노선을 포기하고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2020년 12월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야권 최종 단일화 단계에서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패배해 무산됐다.
2021년 11월 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것을 공식 선언했다. 이를 두고 대권 도전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대선 불출마’ 약속을 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데 대해 안철수는 “서울시장에 당선이 되면 도중에 서울시장 그만두고 대선에 나가는 일이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대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5~17%까지 올랐으나 결국 2022년 3월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공식화했다. 두 후보는 정권 교체를 위해 단일화를 결정했다고 밝히며 대선 직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 대선 승리와 공동정부 구상
윤석열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정권 교체를 성공한 이후 안철수는 공동정부 구상안 구체화에 나섰다. 그는 대선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을 추진하는 한편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결성 당시 인수위원 24명 중 8명이 안철수 측 인사로 꾸려져 공동정부 구상안이 성공적으로 안착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인이 발표한 국무총리 및 1기 내각 구성원 중 ‘안철수계’나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사가 단 1명도 없어 공동정부 구성안은 시작부터 파열음을 빚었다.
이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간 합당 역시 실무합의만을 두고 일시정지됐다. 안철수 역시 인선 발표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출근하지 않아 공동정부가 결국 무너지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이를 두고 벌어진 갈등은 윤석열과 안철수 두 사람 간 담판으로 봉합 수순을 밟았다.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을 마무리하고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단일 공천을 하기로 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김은혜 의원이 경기지사직에 출마하며 공석이 된 성남 분당구갑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해 국민의힘의 선거 승리에 힘을 보탰다. 그가 분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없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한편, IT 등 첨단 기업이 밀집한 판교 특성 상 안랩 등을 이끈 경력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그간 쌓아올린 인지도를 바탕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결국 그는 6월 지방선거에서 62.30%(8만 3,747표)의 득표율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후보(37.49%, 5만 235표)를 가볍게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로써 안철수는 2012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19대, 20대 국회의원을 거쳐 집권여당의 3선 중진의원이 됐다.
평가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기성 정치권에서는 정치 능력이 떨어지고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기성 정당을 혁파할 새로운 정치가 가능한 혁신적인 정치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새정치’라는 정치관을 주장하며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해 정치관이 불확실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7년 8월 3일 당대표 출마 선언 당시에는 ‘극중주의’를 표방한다고 밝혔으나 정치에는 명확한 중도가 없다는 지적을 받거나 정치 철학이 부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는다.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잘 쓰지 못하고 부부 싸움도 존댓말로 한다고 전해진다. 틀에 박힌 모범생 이미지와 유약하다는 평가가 발목을 잡았는데, 이를 인지한 이후에는 사석에서도 거침없는 화법과 유머를 구사하는 등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많았다.
경력
1986년 3월~1989년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1989년 9월~1991년 2월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
1990년 1월~1990년 2월 일본 규슈 대학 의학부 방문연구원
1991년 2월~1994년 4월 해군 군의관
1995년 2월~2005년 3월 안철수 연구소 대표이사
2005년 2월~2011년 2월 POSCO 사외 이사/이사회 의장
2005년 3월~2012년 9월 안철수 연구소 이사회의장 및 CLO(최고학습책임자)
2008년 5월~2011년 5월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KAIST) 석좌교수
2008년 5월~2012년 5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2011년 5월~2012년 9월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 이사
2011년 6월~2012년 9월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14년 2월~2014년 3월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
2014년 3월~2014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4년 8월~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2016년 1월~2016년 2월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
2016년 2월~2016년 4월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2016년 2월~2016년 6월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2016년 6월~2017년 4월 국민의당 서울 노원구 병 지역위원장
2017년 8월~2018년 2월 국민의당 대표
2017년 10월~2018년 1월 국민의당 제2창당위원회 인재영입위원장
2018년 1월~2018년 2월 바른미래당 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2018년 3월~2018년 6월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2019년 10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방문학자
2020년 2월~ 국민의당 대표
2020년 3월~2020년 4월 국민의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언행일치 선거대위원회 중앙선거대책위원장
2021년 3월~2021년 4월 국민의힘 4·7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가족관계
아내
슬하
1녀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학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수상내역
1990년 12월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
1996년 12월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2000년 3월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젊은공학인상
2000년 10월 제14회 인촌상
2001년 제2차 아시아 유럽 젊은 기업인 포럼 젊은 기업가상
200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2002년 제1회 대한민국S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2002년 동탑산업훈장
2003년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부문 대상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교육부문
2010년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2011년 대전광역시 명예시민패
2013년 제15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14년 제16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15년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 제5회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상임위 모범상
2015년 제3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2015년 제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16년 제18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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